김관식(金冠植),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金素月) 김수영(金洙暎) 휴학계
전봉래(全鳳來) 김종삼(金宗三)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시인학교](1977년)
*. 교사(校舍) : 학교 건물
#. 김종삼 시인(1921년~1984년) :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6·25가 한창인 1951년 [군사다이제스트]를 통해 등단. 공초 오상순 시인을 연독(煙毒 : 담배 골초)이라 하면, 김종삼 시인을 주독(酒毒 : 술고래)이라 부를 만큼 술을 좋아해 많은 기행(奇行)을 남김
<함께 나누기>
원래 제가 배달하는 시는 주로 1990년 이후에 나온 시인데 오늘은 그보다 훨씬 전에 발표한 시를 올립니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언급하면 이 시인의 대표작은 「묵화(墨畫)」로 고교 교과서에 실렸으니 한 번쯤 이름 들어봤을 겁니다. 오늘 시에 나오는 이런 시인학교는 없겠지요. 어쩌면 시인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시를 가르치는 학교가 되겠습니다. 가르치는 스승과 배우는 제자가 이리도 짱짱한 학교를 볼 수 없으니까요. 시인 아닌 분도 나오니 ‘예술학교’가 더 정확한 이름이겠지만
먼저 강사진부터 봅니다.
음악 부문 강사로 모리스 라벨이 나옵니다. 저는 처음 들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쟁쟁한 분이더군요. 프랑스의 클래식 작곡가로 50여 년 동안 100여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으나 남은 곡들이 대부분 불후의 명곡이자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미술 부문 강사로 폴 세잔은 아마도 이름 한 번이라도 듣지 못한 분은 안 계실 듯. 프랑스의 대표적 화가로서 현대 미술(특히 입체파)의 아버지라 불리는데 대표작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이 유명합니다. 시 부문의 강사로 에즈라 파운드가 나옵니다. 미국의 유명 시인으로 구체적이고 명료한 단어를 사용하여 사물을 묘사하는 것을 지향하는 '이미지즘' 사조의 대표로 이름났습니다.
그런데 학교 게시판에 <공고>가 붙어 있습니다. 오늘 강사진(라벨, 세잔느, 파운드)이 다 결강이라고. 그러자 학생인 김관식이 욕설을 퍼부으며 교실에서 막걸리를 마십니다. 이 김관식은 시인이지만 시인으로서보다 기인으로 더 알려져 있지요. 김관식 시인은 술만 마시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문단 선배이며 20살 이상 되던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를 보고 ‘서군’, ‘박군’, ‘김군’이라 했으니까요. 특히 서정주는 손윗동서였건만.
다음으로 김소월과 김수영은 이미 휴학계를 내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를 제 나름으로 풀이합니다. 김소월과 김수영은 같은 학생이지만 이미 경지에 올라 더 배울 게 없어 휴학을 하지 않았나 하는. 그다음 전봉래(全鳳來) 시인과 김종삼 시인이 나오는데,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눕니다. 이 둘은 아직 위의 학생들에 비하면 얼굴 쳐들 군번은 아닌 듯. 허지만 멋 부릴 줄은 알아 싸롱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지중해 동쪽 연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레바논이 전쟁터로 비참함과 황폐함을 떠올리지만 당시엔 여행 가고픈 지역으로 널리 알려졌나 봅니다.
오늘 시에 등장하는 강사든 학생이든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닙니다. 다들 천재였으며, 그들의 삶과 죽음은 비극적이었다는 점. 그리도 뛰어난 예술가들이건만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인정 못 받아 불우하게 살다가 사후에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리스 라벨이 만든 곡은 대체로 감미로웠건만 교통사고를 겪은 뒤 정신장애에 시달리다 불행하게 갔고, 폴 세잔은 청년 시절 미술학교에 낙방했는가 하면, 화랑으로부터 그의 작품이 거절당한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반유태주의자로 나중에 모국인 미국으로부터 추방령을 받고 떠돌이 삶을 살았고, 김관식, 김소월, 김수영, 전봉래 등도 천재시인이었으나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살아 술로 한을 풀며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종삼 시인에 얽힌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학교에 한 번도 가지 않던 분이 어느 해 소풍날에 딸과 동행했더랍니다. 딸은 점심을 먹고, 시인은 술을 마시고. 나중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한참 찾았더니 언덕 아래에서 큰 돌을 가슴에 얹고 잠자고 있었답니다. 하도 이상하여 딸이, “아버지, 왜 그래?” 하고 묻자, “응, 하늘로 날아갈까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