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 칡의 지구 정복 시나리오(제1부)




@. 제11화 ~ 제14화까지는 중편우화 '칡의 지구 정복 시나리오'를 연재합니다.



* 칡의 지구 정복 시나리오 (제1부) *



칡이 유난히 많이 자라는 골짜기라 ‘칡골’을 끼고돌며 이루어진 마을이라 이름도 칡마을입니다. 한자로는 갈촌(葛村)이라 하지요. 이름 그대로 이 마을 뒷산은 물론 앞산에도 옆산에도 칡이 온통 다 덮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부터 겨울까지 이 마을로 몰려듭니다.

왜냐구요? 칡을 캐기 위해서죠. 간에 좋다고, 골다공증에 좋다고 방송을 탄 뒤부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칡은 뿌리 말고도 정말 버릴 데가 하나 없습니다. 잎사귀는 염소 양 토끼의 먹이로 쓰입니다.

뿐인가요, 줄기로 ‘삼태기’, ‘광주리’, ‘바구니’ 같은 공예품을 만들고, 또 입맛 없을 때 꽃으로 칡꽃차를 만들어 마시면 좋다는군요. 이러니 칡마을로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칡들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칡마을 칡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죠. 길이는 한 자, 두께는 사람들의 새끼손가락 굵기에 이르는 어린 칡에서부터 칡대왕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길이 50미터, 두께 지름 한 자에 이르는 칡까지 다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로 출발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함부로 칡을 캐가는 사람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맙니다. 맨 처음 불을 지른 건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 숨 막히게 만들어 결국 죽게 만든 일을 늘 자랑하는 ‘소나무칡’이지요.


“아주 예전부터 사람들이 우릴 캐 말려 갈아서는 그 가루로 떡을 빚거나 국수로 뽑아 끼니를 대신했지요. 그땐 워낙 가난하여 먹을 양식이 없다 보니 그랬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은 먹을 게 넘쳐나는 데도 우릴 못 먹어서 저 난리인데 가만있으면 되겠어요?”

“가만있지 않으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에게 칼이 있어요, 총이 있어요? 고작해야 줄기뿐인데...”

하고 말을 받아친 건 골짜기 비탈에 자라는 ‘비탈칡’입니다. 그 뒤로 둘이 잠시 다투다가 자리에 앉자 이젠 발언권도 없이 하나가 말을 마치면 그 뒤를 다음이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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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번에 몇 사람이 온 산을 설치고 다닐 때 그중 한 사람에게 걸려 몸통이 반쯤 잘려 나가 다시 뿌리내리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또 아프긴 얼마나 아팠는지…”

“그래도 완전히 죽게만 만들지 않는다면 참을 수 있지요. 그냥 간지러운 데를 긁어준다고 생각하면서...”

“맞아요. 몸에 좋아 캐러 다니는 거야 아무리 캐간들 얼마나 되겠어요. 또 뿌리 끝까지만 캐지 않으면 다시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뿌리를 말라죽게 만드는 근사미(根死尾 : 식물의 뿌리까지 죽이는 제초제)인가 뭔가를 뿌리는 게 문제죠. 완전히 우릴 끝장내려 들잖아요.”

“진짜 그게 문제지요. 우릴 꼭 필요한 만큼만 캐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뿌리째 말려 죽이려 약을 친다는 게 큰일이지요.”


“그건 큰 걱정을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약 문제는 우리보다 사람들이 더 예민해하니까요. 얼마 안 있으면 치는 사람에게도 피해가 가고 나중에 환경을 오염시킨다 뭐다 하는 얘기를 누군가 하면 곧 멈출 테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아무리 사람들이 캐가든, 약을 쳐서 죽이든 우린 큰 영향을 받지 않잖아요. 자 여기 모인 우리들을 한 번 보세요. 전보다 훨씬 많아졌잖아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더 불어날 게 뻔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너무 불어나는 것도 문제는 있어요. 산림 황폐의 주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우릴 말살시키려 들 걸요.”


“그래, 지금 한 말이 문제야. 그래서 말인데…”

하며 말을 자르고 나온 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칡대왕입니다.

“내가 오래 살아봐서 아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해가 된다 싶으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아. 그래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해.”

“어떤? 사람들이 우릴 죽이려 들면 죽을 수밖에 없지 별 수 있어요?”

하며 말을 받은 이는 지난해 버드나무를 옭아매 결국 버드나무를 죽게 만들어 ‘버드나무칡’이라 별명 붙은 칡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칼을 들이댈 거야. 그때를 기다려선 안 돼.”

“기다려서 안 되면 어떡해요? 별 뾰족한 수가 있어요?”

“그럼 너희들은 모두 다 죽기를 바래. 정말 그래?”

모두의 말문이 순식간에 닫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