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 거미의 실수


큰 고개란 뜻의 '한티재' 너머 가는 숲에 사는 거미 이야깁니다.


거미는 아주 단순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줄을 쳐놓고 벌레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면 되니까요.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있을까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고, 특별히 꾀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거미줄만 치면 되니까요.

처음에는 줄을 가늘게 쳤습니다. 가는 줄에 덩치 큰 녀석들은 다 빠져나가고 작은 파리 같은 약한 벌레들만 걸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들만이라도 꾸준히 걸려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덩치가 적은 대신 마리수가 많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벌레들도 꾀가 생겼는지 잘 걸리지 않게 되었지 뭡니까.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거미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료의 시체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게지요.

거미는 다시 줄을 쳤습니다. 단 이번에는 조금 굵게. 그러자 잠자리나 메뚜기처럼 제법 큰 벌레들도 걸립니다. 그들은 파리에 비해 먹을 게 훨씬 푸짐합니다. 비록 마리수야 적지만 전체 먹이 양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법 큰 벌레들도 눈치를 챘습니다. 메뚜기는 날개가 있지만 다리도 있으니까요. 힘찬 발길질에 탈출하는 놈들도 생겨났습니다. 먹잇감이 줄어든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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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고민하다가 이번엔 방법을 달리 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굵게 치느니 아예 전보다 훨씬 굵게 치기로 말입니다. 칠 때야 좀 힘들겠지만 작은 벌레 여럿 잡느니 큰 녀석 한 마리만 잡아도 된다면 그게 더 쉬운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그날부터 거미는 한 겹 또 한 겹… 오로지 줄 치는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너무 힘들어 몸이 지쳐갔지만 점점 굵어져 가는 거미줄을 볼 때마다 다가올 찬란한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버텨냈습니다.


드디어 거미줄은 더 굵을 수 없을 만치 굵어졌습니다. 이젠 어떤 곤충도 걸렸다면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곤줄박이 같은 아주 작은 새도 걸릴지 모릅니다. 단 한 마리만 걸리기만 하면 노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나방과 같은 작은 곤충들은 눈에 훤히 보이는 거미줄을 보고 아예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메뚜기와 덩치 큰 잠자리도 위험을 느꼈는지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미는 기다렸습니다. 언젠가 큰 먹잇감이 걸려든다는 믿음을 안고서 말입니다.


기다림에 지쳐 눈이 절로 감기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거미줄이 출렁합니다. 줄에 매달린 거미조차 잠시 튕겨나갔다 돌아올 정도로 말입니다.

‘이 정도면…’

거미의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입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눈을 떠 먹잇감을 바라봅니다. 어차피 이렇게 굵은 줄에 걸린 녀석은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한 겹이라도 못 빠져나가는데 열 겹, 스무 겹을 지나 오십 겹도 지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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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걸린 먹잇감이 너무 큽니다. 커도 정말 너무 큽니다. 더욱이… 벌레가 아닙니다. 큰 벌레라고 여겼건만 올빼미입니다. 밤에 날아다니는 올빼미가 워낙 거미줄을 두텁게 쳐놓다 보니 날개 한쪽이 걸렸던 겁니다.

워낙 큰 먹잇감에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차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올빼미의 눈에 거미가 들어왔습니다. 거미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틈에 올빼미는 화가 난 듯이 한 입에 덥석 거미를 집어삼켰습니다. 거미의 잘못은 올빼미가 날개는 걸렸으나 주둥이는 걸리지 않았다는 걸 잊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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