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儒林)하다

스타일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by 삥이



독일 출신의 미합중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Johanna Cohn Arendt)는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다."
(Mit der Geburt eines Menschen kommt etwas Neues in die Welt, etwas, das es vorher noch nie gegeben hat.)

- 원 뜻은 '한 인간이 태어날 때, 이전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이 세상에 들어온다.'






덴마크 왕국의 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말한다.



"군중은 거짓이다."
(Mængden er Usandheden.)










그렇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만들어지고,

홀로 있을 때 완성된다.




신은 인간을

군중 속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부르셨다.







또한 그렇다,



같은 조건이

같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오직 수학에서만 가능하다.



같은 값,

같은 공식,

같은 순서라면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다.



저기 박씨가 계산하든,

여기 밍씨가 계산하든.



반면

인간의 삶은

언제나 변수로 가득하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법인지라,





고객의 떨림 한 번 못 본 사람이

감히 '정파'의 기술을 선보이겠노라

고객에게 기만술을 펼치는 순간

'정파'와 '고객' 사이 이도저도 아닌

Ssip새 포지션이 되는 건 순간인 것처럼





인간은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루는 법을 드러낸다.





<Max Richter - Written On The Sky>









01. 잠자리





인간은 잠자리에 들어설 때,

자신을 대하는 방법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다.



어떤 이는 잘 갖춰진 잠옷으로,

어떤 이는 다 찢어진 후줄근한 옷으로,

어떤 이는 그저 이불만 깊이 덮은 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위 세 인물은


재산, 지식의 총량, 직업, 성장 배경,

주변 관계, 기본 소양 등이 모두 같다고 가정해도 좋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다.



가치관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고,

만족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엥, 왜? 뭐가 문제야?"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조건 속에서도


어떤 이는 사소한 결핍에 무너지고,

어떤 이는 작은 충족으로


하루를 견딘다.



그 모두가

사람이다.





제아무리

가면을 쓰고 고상한 척 연기해 보아도


말 몇 마디를 나누면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





인간은

그만큼 모순적이고,

불완전하며,

솔직한 존재다.



인간은

보행하는 존재이다.



생각하며 걷고,

선택하며 걷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통과하지.








인간이라는 종(Species)은



각자의 리듬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잠자리에 이른다.











02. A-ULIM





영어에서 'a(ㅓ)'는 부정관사로서 역할을 한다.



유일한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것 중 '하나'를 가리킬 때 쓰인다.



즉,

정의되었으나 특정되지 않았고,

존재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그것이 바로

the가 아닌 a.







ULIM은

유림이라고 발음되는데,



유림(儒林)은 공교롭게도

유학(儒學)을 공부하고 따르며,

그 학문을 삶의 태도와 언행으로 체화한 이들의 집단을 뜻한다.



서원,

성균관,

향교에서

지식만이 아니라

품위와 절제를 함께 배운 사람들.



즉,

유림이란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에 걸맞게 살아온 사람들'을 의미한다.








qna.gif BOOM, BY 레제



본디 인간은

지식을 먼저 습득한다기보다는

습관을 먼저 축척하는 동물에 가깝다.



신경과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이해'보다 '반복'에 먼저 반응한다고 한다.




예컨대 우리는

자전거 타는 법을

'이해'에서 배우지 않는다.



균형의 원리,

회전 반경,

중심 이동을

이론으로 익힌 뒤

페달을 밟는 사람은 결코 없다.


넘어지고,

다시 올라타고,

또 넘어지는 반복 끝에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안다.

(아빠 나 봐봐 헤헷!!)




또는 예컨대

말투 역시 그렇다.



'존중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보다,


존중하는 말이

입에 먼저 붙어버린 사람이

훨씬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지금은 공손해야지'를

계산하는 순간,


이미 리듬은 어긋난다.




정말 예컨대

감정 역시 그렇다.



화를 참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도덕적 사실이지만


실제로

화가 나는 순간

표정이 먼저 굳고,

어깨가 먼저 올라가며,

목소리가 먼저 변한다.


이후에야

이성은 뒤늦게

'아.. 참아야 했는데'라고

상황을 해석할 뿐이다.







즉,


인간의 뇌는 정말로

'이해'를 먼저 삼는다기보다는

'반복'을 먼저 수행함에 있어

'앎'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상황에서 멈추고,

어떤 상황에서 넘는지.



그 축적된 반복이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태도를 만들며,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의 '아우라'가 되지.





불균형.jpg 기묘한 비대칭



그래서 인간 사회에는

기묘한 비대칭이 존재한다.



지식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있지만,



품위는

시간 없이는 절대 얻어지지 않는 것처럼.






유학이

수백 년 동안

공부보다 수양을 앞세운 이유도



말을 배우는 속도보다,

말을 참는 속도가 느리면,



그 자는 아직

그 옷을 입을 시간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단순히 '도덕'의 문제로 삼을 수 있겠는가?





속도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시간이 통과하지 않은 자리에

형식이 먼저 도착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감지한다.




인류학적으로

모든 사회는 공통된 규칙을 갖는다.



지위는

의식을 통해 승인되고,



의식은 오랜 반복과 관찰을 통해

공동체에 '인정'을 받는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그 자리는

공식적으로는 허용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CEO 아들내미가

낙하산으로는 '팀장'이어도

팀원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기업 내에서는 '의도적 불편함'이 일어나는 것처럼.





끝없는 경쟁사회에 놓인 우리는,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를 강하게 옥죄고 있기에



지식은 있으나

리듬이 분방하고,


형식은 있으나

침묵의 훈련이 부족한 누군가에게는



'당신, 그 옷이 어울리지 않소.'

라는 말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ULIM




a는 '어떤 하나(불특정한)'

ULIM은 '유학적 태도와 품위를 체화한 사람들'




a 儒林은 즉,

유림이라는 언어는 가졌으나,

아직 그 언어가 삶의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은 이.




즉,

아직 몸이 따라오지 않은 철학을

외형부터 먼저 입혀버린 자.




어울림의 붕괴.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말의 정체.



(지어낸 작가에게 박수를)













꾸미다.gif





그래서 어떤 옷은

유행이 아니라

시간이 입혀주기도 한다.



또한,



어떤 태도는

지식이 아니라

반복이 만들고,



어떤 품위는

의지가 아니라

속도가 완성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신에게

먼저 옷을 입혀버리기도 한다.



그 어색함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 불편함을 말로 옮길 뿐이다.



"님, 얼굴은 웜톤인데 옷이 미스이셈."





어울림의 붕괴는

비난이 아니라

시간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가장 솔직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걷고,

각자의 리듬으로 익어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잠자리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어떤 옷은,


그저,

내게 안맞는 옷으로 남을 뿐일 때도 있다.






어울림이 있어야,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스타일이라는 것은


아마


시간신뢰,

그리고 유림(儒林)처럼 변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을지.





검정색 터틀넥,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를 고집해서 입던

스티브 잡스가 '놈코어룩'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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