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나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약간의 결심
나는 2022년 11월 OO문화재단에서 퇴사했다.
그동안 30대 중반이 된 나는 20대와 비교해 여전히 크게 바뀐 게 없다.
3년을 다닌 회사를 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평소 같지 않은 기분도 사실이지만 아주 특별한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해보려는 것 만큼이나 어정쩡한 모습이다.
굳이 나쁨과 좋음 중에 고른다면 기분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못 갔던 도서관에 갈 여유도 있고 배우고 싶었던 목공이나 인공지능 교육에 과감히 도전해봐도 좋으니까, 그런 들뜬 기분도 있지만 동시에 어느 날 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괜스레 이제 퇴사가 얼마 안 남았단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그런 기분도 있다.
세상에 나 혼자 퇴직하는 것도 아닐 텐데 혼자 감상에 겨워 자전거를 타고 파도치는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흘러들어옴과 흘러나감.. 그러고 보면 세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심지어 돈을 받고 하는 직장 생활도 가끔 소꿉놀이 아이들 장난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돈이라는 녀석은 사실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데 보이지도 않는 모종의 ‘합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는걸 보면 그렇다.
따지고 보면 결국 ‘사회적 동감’이라는 개념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 연예인들이 방송에 더는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법을 어겨서가 아닌 경우가 가끔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전화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이유도 내가 사회가 바라는 건실한 청년의 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어떻든 나의 모습이 어머니의 주변에 자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된 부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철없는 선택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 사회가 그렇게 싫은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몇천 년에 걸친 집단 지성의 결과가 태초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몽둥이가 법인 과거에 살았다면 이미 예전에 내 삶은 제 권리를 못 찾고 누군가에 의해서 결단 났을 테니..
직장내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어떤 사건은 누군가에겐 별일이 되고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일이 된다. 보통 별일이다 라고 우기는 직원이 별일이 아니라고 하는 직원을 괴롭히는 식이다. (정말로 별일인 경우도 있다.) 사건은 주관적이다.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옷에 튀는 게 하루의 기분을 망치게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기도 한다.
일상의 사건은 각자의 책임으로 남는다. 하지만 같이 하는 일은 누가 책임지고 누가 권한을 가질까.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연초에 아무런 권한도 없이 책임만 한 가득인 별일들을 처리하면서 동료와 멀어지고 사람을 싫어하고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든 적이 있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내가 고른 기획서와 디자인은 여기저기 한 가닥 하는 하이에나들이 몰려와서 물어뜯고 너덜너덜해졌다.
대체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고 당신은 얼마나 전문가여서 나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이러쿵저러쿵 한단 말인가, 미웠다.
그런데 동시에 사슴반 어린이가 밥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모습이 동료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나도 코끼리반 어린이가 되어 싸우기는 싫었다, 어짜피 내 손을 한참 떠난 일이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밥 안 먹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듯이 더 시도하고 더 뭔가 다른 걸 해보았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했다. 엎치락 뒤치락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위기 후에도 직장생활은 이어지고 또 타성에 젖는다. 그러면 사회가 마련한 시스템에서 내가 부품처럼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부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함보다 불행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보루에 가깝다.
취업하기 전 조그만 음악 작업실을 하던 나는 예산 상황상 길거리의 노숙자분들과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퇴사를 앞둔 내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말했다 혹시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변명을 곁들여,
“세상에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었다.
누구도 동의하진 않고 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릴만한 발언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일을 한 숨 끊어내는 것과 그동안의 관계들 역시 잠시 끊어내는게 우리를 더 생기있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 인생에서 손꼽게 마음이 편한 시점이었고, 다른 의미로는 부쩍 늙어간 순간이었다.
일에 대한 압박으로 머리를 싸맨 적이 많았지만,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은 부족했다. 할 여유가 없었을 뿐더러 사회나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책임감과 부담이 컷다. 나는 누구일까, 일하는 삶은 내게 어떤 의미 일까?
그렇지만 일이 아니면 또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했던 일들이 세상 별다른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일은 지나가면서 사진이나 영상들을 아카이빙 하겠지만.. 기억은 잊힌다. 순간의 감정들은 소중했지만 다시 반복되는 경우는 없다 일은 끝난다. 끝은 종말이다. 하지만 끝이 있어야 새로운 상태가 생긴다 끝이 있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끝없는 상태의 변화일 뿐
불꽃를 상상해보면 불은 분명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그 따듯함을 손이 느끼고 눈을 뗄 수 없는 이글거림의 굴절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불은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리고 공기가 되어 돌아간다.
불꽃은 끝이 났다. 그리고 뜨거운 공기가 남는다. 공기는 다시 식어 무한의 공기 속으로 새롭게 흩어진다. 같은 불꽃는 없고, 예전의 그 불꽃은 끝났다.
그래도 불꽃은 존재하고 있고, 수 억년 이후에도 영원히 우리는 그 것을 불꽃으로 부를 것이다.
퇴사를 통해 나의 일과 관계들은 끝나고, 나는 불꽃처럼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다.
아직 내 인생에는 더 많은 끝남들이 있을 것 같다. 언젠가 그런 변화가 너무 버거우면 내 삶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 그렇지는 않기에 나는 불꽃처럼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음에는 가능하다면 이 결심을 소개하고 이뤄내는 과정을 여기에 남기고자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차분히 도전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퇴사를 했다.
퇴사가 즐거운 것은 내가 입으로는 늙어서 소화도 안되고 항상 어딘가 아프다고 엄살 부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환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