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문 일지 2

by 한지원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용돈에 목메지 않았다.

쓸 일도 별로 없었고,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그렇게 마음이 허하지도 않았다. 사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인 지금도 주머니가 비어있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같이 아르바이트 거리도 흔치 않을 시절이었고, 항상 넉넉지 못한 용돈에 굶주렸다.

학우들과 막걸리도 한 잔 해야 하고, 그놈의 당구장에 출근부 도장도 찍어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매일 손 벌리기도 미안하고...

가수 조용필의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 거리는,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학교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는데...

학보에 실을 원고를 모집한다는 학보사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원고지 매수와 비례하여 원고료가 지불된다고...

"그래 저거라도 써서 용돈을 조달해야 되겠다!"

멍청하고 게으른 사냥꾼이 아직 잡지도 않은 토끼 한 마리를 보고, 떼 돈 버는 상상을 했다는 우화처럼, 내가 꼭 그 짝이었다.

먼저 소재를 정하고 주제는 글을 써가며 다듬기로 계획을 잡고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분량(원고지 매수)...


제목은 '낚시 철학'

중학교 3 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국어 교과서에 '모자 철학'이라는 에세이가 생각나서 오마주(Hommage)하는 심정으로 제목을 정했다. 결코 표절은 아니다.

고요한 여름날 새벽,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거울 같은 저수지에 점점이 떠있는 찌를 바라보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명상을 하는 낚시꾼의 광경을 수채화처럼 그렸다. 내가 생각해도 참신한 발상이었는데...

원고지 매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식사와 술 한잔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충분한 액수의 원고료가 나오도록 글의 길이도 맞추었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학교 신문사에 원고를 제출하고 연락이 올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연히 연락은 없었다.


1985년...

군사독재 전두환 정권 아래, 크게 숨 쉬지도 못하는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학교 선배들은 학생회나 동아리를 통하여 후배들에게 민주화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의식화 교육에 여념이 없었고, 학교 신문은 정치적 이슈나, 작금의 사태에 한숨짓는 칼럼을 싣기 바빴다.


돈에 눈이 멀어...

삼복더위에 늘어난 엿가락처럼, 만연체(蔓衍體)의 축축 늘어진 문장은 재미나 감동은커녕,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만 뼈에 사무치게 만들었을 것이며, 시국에 맞지 않는 한가한 브루주와(Bourgeois) 같은 낚시 칼럼은 수채화 위에 덧 칠해진 유화 물감 같은 것이었으리라...

내가 편집장이라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나중에 원고를 돌려받으러 학보사에 들렀지만, 어디 두었는지, 찾지 못하겠다는 성의 없는 답변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쓰레기장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하였다.

무릇 글쟁이는 주변 사람들과 공감해야 하며, 시대상이 반영된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염불보다 젯밥에 맘이 가 있으면 안 되며, 배고픈 직업임이 틀림없다.

이로서 나의 얄팍한 투고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당분간 나의 글쓰기도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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