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문 일지 5

by 한지원

公文書도 수필처럼.

1. 귀사의 일익 번창하심을 기원합니다.

2.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존경한다.

정글 같은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자기 마음속 이야기는 위에 언급한 대외 공문(對外公文) 정도로 변해버린다. 판사는 판결문에, 의사는 진단서에, 검사는 기소장에 자신들이 걸어온 인생 경험과 갖고 있는 지식을 담아낸다고 하는데...

그러나 요즘은 이 인간들이 돈에 눈이 멀어, 양심과 철학을 내팽개친 것 같다.


우리의 사회생활은,

말랑말랑한 감상이나, 세심한 의식의 흐름은 마음 저 구석에 격리시키고 오롯이 무자비한 논리와 알량한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제압하게 만든다.

그것이 본인의 성공이며, 회사에 충성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감상적인 詩 나부랭이나, 신변잡기 같은 수필(隨筆)을 아무리 잘 쓰는 사람도 공문(公文)으로 상대 업체를 제압(制壓) 하지 못하면, 회사에 사표(辭表)를 써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의 사회생활의 글 쓰기는 중세의 암흑 시기이다. 먹은데로 싸는 생물학적인 법칙이 만고의 진리라 깨닫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거래처 사람들과 술 먹을 시간은 있어도, 머릿속에 감성을 넣을 책 펼칠 시간은 없었다.

그러하니, 내가 쓰는 글이란 대외 공문서(公文書)가 전부였다. 한 가지 덧붙이면, 소싯적에 사업계획서도 조금 썼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 엔(円, Yen)貨의 값어치가 땅바닥을 치고 있어,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을 국내에 유통시키는 우리 회사는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나는 새롭게 개척한 고객사에 견적서를 컨펌(confirm) 받아 대량 납품할 생각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꿈도 잠시, 세계경제가 요동치면서 엔화의 강세가 시작되었다. 업친데다가 덮쳐서 미리 발주 내었던 제품들은 납기가 점점 늦추어지고, 몇 개월 사이의 벌어진 환차손은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칠 것이 확실했다. 기존의 고객사들은 변동된 제품단가로 납품하면 그만이지만, 신규 거래처는 협의를 다시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거래처 담당자는 요지 부동하며 계약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나는 해결책을 모색하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날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거래처 대표이사에게 정성 들여 공문을 쓰기 시작했다.

간결하게, 하고자 하는 내용만, 불필요한 수사나 표현은 하지 말고...

이런 거 다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썼다.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사표 쓰게 생겼으니 살려달라고 마음으로 진심을 다하여,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썼다.

그리고 환율의 변동에 따르는 가격 테이블을 붙여, 나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귀사는 손해보지 않는다는 논리에 대한 근거를 첨부했다. A4용지 몇 장이 넘어가는 공문 답지 않은 공문이었다.

대표가 외국인이 다국적 기업이어서, 담당자에게 공문 내용을 대표에게 가감 없이 전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회사 직인을 찍은 공문을 직접 전달했다.

며칠 후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 결제가 났으니, 계산서 발행해서 제품 보내 주세요!"


공문도 때로는 수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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