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문 일지 6

by 한지원

대학 동문들과 괴산에 마을을 만들었다.

"미루마을"

마을 부지 한가운데 미루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고, 비바람이 불면서 천둥과 벼락이 치던 어느 날 그중 한그루가 벼락이 맞아 쓰러졌다. 그리고 나머지 두 그루도 시름시름 마르면서 죽어갔다. 그래서 세 그루 모두 굴삭기로 뽑아서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만든 마을 이어서 '미루마을'이라고 불렀다.

삼년에 걸쳐 터를 닦고, 앞으로 남은 평생을 살 집을 짓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을주민들이 무사히 입주를 마치고...


우리는 미루마을과 주변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 및 협업을 통하여 소멸되는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거창한 꿈을 꾸었다. 그래서 마을에 사람들이 입주한 첫 해에 젊은 입주자들을 중심으로 절임배추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주변의 농부들에게서 배추를 공급받아 괴산의 그 유명한 절임배추를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안민동'이라는 곳으로 이사 가서 성실한 농부가 된 후배가 그 당시에 미루마을 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을 하고 있을 때다.

"형 절임배추 박스에 들어갈 소개글을 하나 써봐!"

그래서 절임배추 소개글을 썼다.

'고객님들이 받은 절임배추는 괴산의 늙은 농부가 기르고, 귀농한 젊은이들이 정성껏 절여서 보내드리니, 그 배추로 만든 김치는 당연히 맛있을 것이며, 귀댁에 건강과 행운을 선사할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읽어본 사람들이 나에게 한 마디씩 했다.

"늙은 농부란 단어는 빼는 것이 좋지 않겠어!"

"굳이 귀농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내가 쓴 대로 넣어서 보내시자고요! 아니면, 본인들이 다시 쓰시던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볼멘소리를 좀 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옆에서 훈수 두는 놈 목소리가 더 클 때가 있다.


아무래도 좀 서툴 수가 있었다. 깨끗하고 정성을 다해서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라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곳의 절임배추와 비교하리라 예상했고, 처음으로 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클레임의 발생은 우리 구성원들의 사기를 현저히 떨어뜨려, 계속적인 사업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들었다. 고객들은 내용물이 마음에 좀 안 들더라도 늙은 농부가 재배했다고 하고, 귀농한 아마추어들이 만든 절임배추라는데... 어떻게 반품이나 컴플레인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김장을 담그는데 전혀 하자가 없는 것을...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사실 그 절임배추 소개글에는 나의 영악한 마음을 집어넣어서 의도적으로 작성했다.

그러나 순진한 미루마을 주민들이 애꿎게도 나에게 뭐라 하니 속이 뒤틀릴 수밖에...

그 절임배추를 소개하는 글은 내 의도대로, 문구 수정 없이 프린트되어 판매된 모든 절임배추 포장박스에 한 부씩 넣어서 보냈고, 그 소개글 덕분인지 한 박스의 클레임도 없었다.


지금 나는 그 미루마을을 떠나 옆 골짜기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 어디를 가서 살던,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맘에 안 드는 사람도 한 두 명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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