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Mar 26. 2021

외국인 이주노동자


한국사람들은 義에 강한 민족이라서 강자에게 당당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민족이다.

그 예로 한반도 주변국 사람들에 대한 호칭으로 알 수 있다.

강대국 국민들에게는 '놈'자를 붙이고 약소국 국민들은 '사람'자를 붙인다.(출처 : 페이스북 어딘가에서 보았음)

ex) 미국 놈, 일본 놈, 중국 놈...

     베트남 사람, 인도 사람, 몽골사람, 태국 사람...

상대국이 대한민국보다 강국인지, 약국인지 알고 싶으면 나라 명칭 뒤에 '놈'또는'사람' 자를 붙여보면 알 수 있다.

인도 놈, 몽골 놈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우리 회사 버스노선 중 증평군의 산업단지를 통과하는 노선이 몇 개 있다. 요즘 산업단지에서 버스를 타는 승객의 8할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시골버스에는 '놈'들은 거의 볼 수가 없고 '사람'들 만 타고 내린다.

 그중에 가끔 '중국 놈'들도 타지만, 시골버스를 타고 다니는 중국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핍박을 피하여 만주 등지로 건너간 조선족이거나, 돈 벌러 온 평범한 중국 인민들이니 중국 놈은 없다.

 시골버스 타는 사람은 모두 우리가 보살펴야 할 약자들이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 산업단지 앞 승강장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 2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둘이서 조용하게 대화하는데 'ㅅ'발음이 많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몽골사람 같았다.

 다음 승강장에 거무스름한 청년 네댓 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말하는 품세로 보아 태국 사람들 같아 보였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그냥 직감이다."

그중 한 명의 인상착의를 묘사해보면, 먼저 착하게 생겼다.

신발은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하얀색 운동화를 신었고, 바지는 찢어지고 몸에 착 붙는 청바지, 목 뒤 카라를 세운 옅은 분홍색 셔츠, 소매를 두. 세 번 접은 회색 재킷, 무스를 발라서 한 껏 세운 헤어스타일, 등에 멘 가방, (그 가방은 내가 50년 전 초등학교 입학할 때 멨던 우체통 모양의 가죽 가방과 흡사하였다.)그리고 찐한 향수 냄새.

누가 봐도 한 껏 치장한 모습이다. 나머지도 그 친구와 거의 못지않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가방만  빼고...


이 친구들 버스에 오르더니 먼저 타고 있던 두 아가씨 주변에 자리를 잡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그들만의 대화를 시작하였다.

 새들의 지저귐도 짝을 만났을 때 소리가 평소보다 더 커진다고 했던가. 따뜻한 봄밤에 개구리가 짝을 찾고자 하는 울음소리 나 여름날 매미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거의 목놓아 사랑을  찾지 않던가!.. 사람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 같지 않다.

다섯 명 대화와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버스 엔진 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 사이의 두 아가씨 얼굴은 소리 크기에

비례하여 점점 어두워져 가고...

 물론,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호감 가는 이성 앞에서 호기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되나,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기사의 직무유기라고  느껴져 버스 안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적당한 멘트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지성인답게 이제는 만국 공통어가 된 영어로 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Could you keep it quiet? in public. 또는

Be quiet? please.

속으로 한 번 발음해보고 버스가 신호 대기 중인 네거리에서 막 말하려던 찰나, 기사 바로 뒷 좌석에 유령처럼 앉아 계시던  할머니(기사 제외 유일한 내국인) 왈 "기사양반 나 여기 내려주면 안 될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 지금 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차 쌩쌩 달리는 여기서 내리시면 어르신 바로 돌아가시고, 기사는 오늘로 인생 끝내는 겁니다."

할머니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그 친구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버스기사는 바로 멘트를 시작했다.


"니들! 조용히 안 할래!"

"누가 버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된다고 그랬어!"

" 니들 사장이 그렇게 가르치디?"

 

 나도 모르게 머릿속의 멘트가 번역이 되어 입 바깥으로 나왔다.

 까까머리 고등학교 시절,

 월요일 아침 전교생 조회시간에,

 내가 그렇게 경멸하던 교장선생님 전용 멘트,

(사장을 비, 미로 치환하면...)

40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그 소리가 왜 나왔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육의 힘 인가?. 내 뇌 속에 내재된 트라우마인가?


 사리분별 못 하시는 시골 할머니의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에 파르르 해서, 이성을 상실하고 글로벌 꼰데로 등극하게 된 나 자신이 부끄럽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멀리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며, 경험을 쌓는 건강한 젊은이에게 격려의 말이나 조언은커녕, 그 옛날 본인의 자존심 상하던 말을 기억해 나고는 훅 질러 버리는 나 자신이 한없이 밉다.

 그 말을 알아듣고 죄지은 표정으로 당황해하던 그 청년의 얼굴이, 거의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산업단지 앞을 지날 때면 생각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