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Mar 26. 2021

나이는 손으로부터 온다.


 잠깐 휴식시간에 가방에서 책을 꺼내 버스 핸들(스티어링 휠)에 올려놓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본다.
귀농 전, 잘난 놈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나쁜 머리 굴려가며 사회생활하느라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었다.
 귀농해서 시골에 오면 집 앞 덱크에 우아한 포즈로 앉아서 향기 좋은 커피와 함께 조오지 오웰의 에세이집을 본다거나, 스티븐 호킹의 우주에 대하여 탐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해가 긴 여름날, 주변의 사물이 분간될 시간이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캄캄한 밤이 되면 비닐하우스를 환하게 밝혀놓고 표고버섯을 솎아내곤 했다.
 오히려 농사를 당분간 접은 지금, 책장을 넘길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내 인생의 아이러니 이기도 하다.
시골 버스기사가 된 후로 버스노선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잠깐 남는 틈새시간에 읽는 책 서너 장과 페북에 쓰는 글 서너 줄은 내 팍팍한 삶에 뿌리는 윤활유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 버스기사 모습을 본 어르신들은 버스기사가 하는 말에 신뢰를 가지는 모양이다.
 요즘 같은 점염병이 창궐한 시절에는 버스기사의 마스크 미착용에 대한 질책에도 두말없이 수긍하는 눈치이고, 왜 버스 요금을 미리 받는지를 설명할 때에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한다.
(운행 중 요금 낸다고 걸어 나오다가 넘어져 다치는 경우가 있음)
시골 어르신들은 많이 못 배운 것에 트라우마가 있어 관공서의 일부 부정한 공무원이나, 못 된 정치가의 황당한 주장을 믿거라 하고 비판 없이 믿기도 한다.

버스 돈통에 돈을 넣는 어르신들의 손을 보면 나이를 짐작한다.
농사를 짓는 손이니 오죽하겠냐 마는..
손가락이 제대로 오므려지지가 않아서 동전을 바닥에 떨어 뜨리기도 하고, 떨어진 동전을 집지도 못하고...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이 예전에 보았던 할머니들 손 같다.
귀농해서 농기계 다루다가 다쳐서 여기저기 흠집도 있고,  이제는 쭈굴쭈굴 주름도 잡히고...
나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50대 초반이었던 부친을 여의어서 나이 든 남자의 손을 본적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면서 장인어른의 손을 만지거나 볼 때가 있었는데, 워낙 장인어른도 과수원 농사로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라 그야말로 거친 농부의 손 이셨다.

오늘따라 책 보다 손에 더 눈이 간다.
활자로 이루어진 인생보다,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더 안쓰럽다. 내 인생에 연민을 느끼면 안 되는데...

작가의 이전글 외국인 이주노동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