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행하는 버스의 배차는 짝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꼴로 홀 수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1회차 괴산->강남, 2회차 강남->괴산 운행종료 괴산으로 퇴근. 이게 정상이다.
그러나 1회차 괴산->강남, 2회차 강남->괴산, 3회차 괴산->강남 운행종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일박을 하게 된다.
서초3동 주택가 한가운데에 경기고속이 속해있는 KD그룹 생활관이 있다. 예전에 누군가의 관사로 사용되었었다고 하는데, 서초동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2층짜리 양옥집이다. 서초동 노른자위 땅에 마당이 딸린 개인 주택이니 가격이 꽤 비싸리란 추측이 된다. 지하 주차장이었던 곳은 개축해서 식당으로 개조 했다. 심야운행을 마친 기사들이나 새벽 운행을 나가는 기사들의 늦은 저녁이나 새벽 식사를 위하여 식당을 24시간 운영한다. 조리사가 24시간 상주하는 것은 아니고, 버스 기사들이 어느 시간이나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밥과 국을 요리해서 데워놓고 여러 가지 반찬들을 먹을 수 있도록 카페테리아처럼 해 놓았다.
머슴 노릇도 부잣집에서 하라고 했던 옛말이 틀린 게 없다.
1층, 2층 모두 방이 3개씩 있는데, 노선별로 배정된 방에서 1~2명씩 취침을 한다.
문제는 내가 코를 곤다는 거다. 그것도 엄청 심하게...
버스 기사에게 잠의 질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운행 전날 밤, 설친 잠은 그 다음 날의 기사와 승객들의 생명에 직결된 안전문제와 깊은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전언에 의하면 시골 버스기사의 코골이 소음은 캐터필러사의 불도저가 돌아다니는 수준이라고 했다. 나는 전혀 안 그런 거 같은데...
사실 솔찍이 고백하지만, 나의 코를 고는 소리가 잠결에 내 귀에 들릴 때도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동료기사와 나 자신 모두를 위해, 방에서 나와 이 층 거실에 이불을 깔고 혼자 자기로...
문제는 강남에 사는 이기적인 모기가 문제였다. 내일 근무가 있는 버스 기사라고 절대로 봐주질 않는다. 거실이다 보니 개방된 곳이 많아서 모기를 통제할 수단으로 개인 모기장을 펼쳐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잠결에 간질거렸던 손가락을 기상 후 확인해보니 소지(小指)가 중지(中指)만큼 커져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큰 대자로 누워 자다가 손이 모기장 바깥으로 나갔던 모양이다.
새끼 손가락만 물렸다. 세 방 이나...
'긁기도 어렵게, 자슥이 하필 물어도 거길 무냐?'
나의 혼자말 넉두리다.
더구나 물껏을 많이 타는 특이 체질 이어서, 어디 한 군데를 물리면 물린 부위의 부피가 평상시 보다 커진다. 두 배쯤...
억울하게도 나를 물어 뜯은 모기에 대한 응징도 제대로 못 한 체, 일주일 후에 다시 올 날을 위하여 준비물을 세심히 체크했다.
'다음에 올 때는, 전자 모기향, 파스, 뿌리는 모기약...음~'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 무릎을 탁 쳤다.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다음에는 빤스를 입지 말고 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