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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평 Oct 20. 2023

학생은 A, B, C 중에 뭐라고 생각해요?

A-와 B+

날이 꽤나 쾌청하고 구름이 참 곱게 떠내려가는 가을이었다. 슬슬 찬바람이 후드티 조직에 스며드는 것이 엄연한 겨울의 첫 염탐인 거 같기도 한 날이었다. 친구 만두 양과 점심을 먹고 학교를 한 바퀴 돌던 중에 울타리 너머로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쳤다.


학교에 재밌는 일 없냐며 기숙사 입구 계단에 앉아 키득대는 우리를 보고 밖에서 한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는 것이었다.


 "학생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할아버지께선 초등학교 6학년 손주를 키우고 계셨다. 매일같이 학교 주변을 산책하는데 손주 분을 이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단 것이 질문의 요점이었다. 예기치 못한 난도의 질문이 찾아오자 만두 양과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둘 다 사교육의 산물이었기 때문일까?


만두 양은 맞벌이하시는 부모님과 두 동생과 함께 자랐다. 필연적으로 사교육에 맡겨지기 쉬운 환경이었고, 스스로도 그것에 잘 적응한 케이스였다. 나는 지난날 어머니의 결핍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자식에게 투영한 흔한 사례 중 하나로, 영어 유치원, 어학원, 국제고 진학 루트를 밟았다. 아무튼 간에 할아버지께서 여쭈는 말씀엔 크게 해 드릴 말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답변드린 것은 다음과 같았다.


Q. 이 학교 오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해요?

A. 일단 학교에 지원하려면 중학교 3년 내신 성적이 모두 A가 떠야 해요. 그러려면 시험을 잘 봐야 하는데, 시험공부에 충실하면 충분히 지원할 만한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Q. 그러면 그 공부는 어떻게 했어요? 학교 수업, 문제집 풀기, 아니면 사교육?

A. 셋 다 했죠. 그런데 저는 완전 사교육 출신이라...


Q. 그럼 이 학교는 사교육 안 받고는 갈 수가 없나요?


오, 이 질문에서 턱 막혔다. 그랬다. 이 학교는 참 그런 학교였다. 사교육 없는 학교, 학폭 없는 학교, 전부 거짓말이었다. 물론 이 학교에 온 것은 온전한 내 자유의사였기에 지난날의 나를 원망할 뿐, 학교를 크게 탓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할 만큼 많이 해서 더 나오지도 않는다.


다시 답변으로 돌아가보자.


A. 물론 사교육 없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겠지요. 전부라고 할 수는 없고요. 그런데 중요한 건, 학교는 가르치는 곳임과 동시에 평가하는 곳이란 거예요. 기초 교육은 진행하지만 한 반에 25명이 들어있는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맞춤형으로 수업을 할 수도 없죠. 그래서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풀고, 스스로 부족하단 것을 느끼면 할아버지께 손주 분이 도움을 요청할 거예요. 그때 부차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사교육이죠.


다 거짓말이다.

나도 중학교 시절, 수학 학원과 영어 학원만 다니고 나머지는 전부 학교 수업만 들었다. 그래서 꽤나 우수한 성적을 받고 전교생 360명 중 10등으로 졸업했다. 충분히 이 학교에 올 만큼의 성적을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보니 부족한 게 많았다. 영어 에세이 라이팅, 프리토킹, 중학 내신 이전에 기본적인 국어 공부, 수학 심화 공부. 그 기반이 전무했다.


특목고 수시는 어머니의 싸움이 맞다. 어떤 엄마가 자녀를 어릴 적부터 갈고닦았는지의 싸움이다.


어영부영 질문 세례가 한 차례 지나가고 할아버지께선 우리의 학년을 들으시더니 성적을 여쭤보셨다.


만두 양은 서울대반, 나는 미지수.

수시 원서 8장 중 적어도 한 장은 붙을 수 있을까?


친한 친구에게 박탈감과 열등감, 시기, 질투를 매일 같이 느끼는 것은 약간, 아니면 조금 많이 괴롭다. 내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 속도가 다른 친구들보다 늦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고 직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3년 동안 꾸역꾸역 그 사실을 삼켜왔다.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말씀드렸다.


 "이 친구는 에이쁠이구요! 저는... 삐 마이너스 정도?"


만두 양은 애매한 지점에서 튀어나온 나의 열등감에 당황했을 텐데도 어른스럽게 받아쳐줬다. 성적을 떠나서 내 친구는 비교과를 정말 열심히 한 친구라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친구라고.


그런데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런 거 다 대학 가는 데에 하나 필요 없다고.

성적이 안 되면 그냥 나의 3년은 죽도 밥도 안 되는 거라고.

내가 밤새우고 공부한 거, 울고 웃으며 학생회 활동한 거, 혼자 코피 흘려가며 동아리 일으켜 세운 거 모두 인정 한 번 받지 못하고 외면만 받다가 사라질 거라고.


못난 친구라 너무 미안했다. 나보다 잘난 친구에게 매 순간 내가 못난 사람이고 못된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런 내 맘을 훤히 알고 있을 내 친구에게 나는... 그 순간 정말 어디론가 녹아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할아버지는 그 자리를 떴다. 나와 만두 양 또한 킬킬 웃으며 도망갈 걸 괜히 붙잡혔다고 웃었다. 하지만 내 맘 속 응어리는 아직도 뭉쳐있는 것 같다.


3학년 1학기, 나의 2년 하고도 6개월이 끝나고 하루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차 속에서 운 적이 있었다. 내 삶의 밀도가, 타인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다. 평생 그렇겠지. 나는 이걸 평생 이기지 못하겠지.


유학도 일이 년 다녀왔으면 좋겠고, 어릴 적부터 수학을 열심히 해서 더 잘했으면 좋겠고, 이해력이 좋아서 처음 보는 것도 잘 빨아들였으면 좋겠고... 부족한 거 투성이다. 부족한 것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나는 특목고에 오라고 맘 편히 추천하지 못한다. 물론 이곳에 와서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나는 친구들이 있다. 있다. 분명히 있고, 그들은 내 위에서 새로운 스무 살을 향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 도약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전교생 중 170명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실패를 겪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은 삶을 시기질투하며 밑으로 침잠할 아이들이 매일 양산될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고 이 학교에 온 것을 미치도록 후회했다. 차라리 오지 말 걸. 1학년에 빨리 자퇴할걸.


만두 양은 그런 나의 푸념에 자신을 못 만났어도 괜찮겠냐는 말에 웃으며 그건 안 되지! 하고 대답했지만... 나는 괜찮다. 지난날의 내가 그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둘 것이다.


언제쯤 나는 에이플러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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