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만이 형이 집에 또 찾아왔다. 오늘부로 엿새 연속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날까지 포함하면 무려 일주일째다. 이런 식으로 남을 돌봐주는 위인이 아닌데 뭔가 수상하다. 형은 매번 그러듯이 반지하 집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살다간 없던 병도 생길 거라고, 이 공간엔 사람의 몸과 정신을 썩게 만드는 고약한 기운이 있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돈 벌어서 뭐 했냐고, 없으면 자기가 줄 테니 햇볕 잘 들고 곰팡이 안 피는 곳으로 이사 가라 일갈했다. 말로는 빌딩이라도 사줄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실제로 돈을 주지는 않는다. 엄마 병원비가 모자라 손을 벌렸을 때도 미안하다고 쩔쩔매기만 할 뿐 도움은 주지 않았다. 원망은 하지 않는다. 돈이 있는데 빌려주지 않은 게 아니니까. 진짜 없어서, 탈탈 털어도 먼지 밖에 안 나와서 그런 거니까. 속세에 미련을 버린 불제자가 무슨 돈이 있겠나.
사실 상만이 형은 진짜 스님은 아니다. 그렇다고 엉터리에 사짜라고 하기엔 지나친 것 같고……. 음, 진짜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형은 승려가 되기 위한 공인된 절차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자기가 속세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겠다는데 굳이 왜 승적이 필요하냐는 식이다. 내가 승가대학 가서 공부하고 시험 쳐서 제대로 된 스님이 되라 충고해도 그 시간에 더 많이 참선하고 수행하겠다며 귓등으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틀이나 형식 따위에 얽매여서는 진정한 불도를 터득할 수 없다며 소리 높여 “천상천하유아독존”을 부르짖기만 했다.
상만이 형 절의 신도들도 형이 인정받은 정식 스님이 아니란 걸 안다. 처음에 ‘모하사’란 절을 열면서 형이 다 까놓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엔 신도도 모이지 않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깡패 같은 놈이 사이비 절을 열었다며 수군댔었다. 하지만 교리에 대한 지식도 깊고 우렁찬 목소리로 법문도 잘해,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지금은 제법 많은 신도가 절을 오가게 되었다. 여전히 형을 비난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이 있긴 하나 그 숫자는 예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상만이 형은 오늘은 옆에 드러누워 자지 않고 밖에 나가자고 나를 구슬렸다.
“너 인마, 택배 기사도 관두고 돈 들어올 때도 없잖아. 보니까 하루 종일 집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것 같구만. 내가 하루 일당 쳐줄 테니까 따라와.”
이 중은 아직도 내가 빚에 허덕이는 줄 아는가 보다. 부지런히 돈을 벌어 이자를 갚고 원금 상환을 걱정해야 하는 줄 아는가 보다. 빚은 다 갚았다. 엄마가 남기고 간 보험금으로, 엄마의 목숨값으로 말끔하게 해결했다. 오히려 빚을 갚고도 돈이 남아 당분간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긴 곧 죽을 텐데 빚이 있다 한들 무슨 걱정이랴. 저세상에 가서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꾸물대지 말고 퍼뜩 일어나. 나 배고파. 가서 뭐 좀 먹게.”
어제 형이 사 준 추어탕이 아직 남아 있다. 그저께 사준 죽도 있고. 담희 누나도 이틀 전쯤 갑자기 찾아와 자기가 만들었다며 미역국을 주고 갔다. 음식은 충분하다. 아껴 먹으면 이틀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가고 싶지 않은 나의 의지이다. 가만히 누워 천장이나 보며 멍이나 때리고 싶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곱씹고 또 곱씹어 다음번엔 실패하지 않고 기필코 계획을 완수하고 싶다. 하지만 형의 무시무시한 완력을 이길 수 없기에 결국 끌려 나간다.
이 빡빡이가 음식점으로 곧장 가지 않는다. 동네를 벗어나기에 어디 좋은 데라도 데려가나 싶었더니 어느 중학교 교문 앞에서 멈춰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왜 여기 서 있어야 하냐고 물으니 같이 밥 먹기로 한 사람이 있다며 기다려야 한단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불만을 토로하니 집에 가고 싶으면 가라고 이제 와 윽박질렀다. 내가 알겠다고 말하고선 걸음을 돌리자, 형은 “이게 미쳤나!”고 소리치며 내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렇게 둘이서 ‘집에 가겠다, 가면 패 버린다’하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키가 작고 피부가 하얀 아이다. 체격이 작아 2학년이 아니라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보인다. 얼굴도 앳되어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것 같다.
“헌구 맞지? 우리 전에 한 번 봤잖아. 일단 밥부터 먹자. 뭐 먹고 싶어?”
상만이 형의 물음에 헌구라는 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침은 먹었다고 대답했다.
“인마, 네 나이 때는 무조건 많이 먹어야 돼. 그래야 신나게 놀고 시간 날 때 공부도 조금씩 하고 그러지.”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상만이 형은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숫기가 없어 그런지, 아니면 증장천의 기에 눌린 건지, 말없이 우리를 따라 들어왔다. 형은 나에게는 만둣국을 먹게 하고, 헌구를 위해 떡볶이와 순대를 시키고 라면도 주문했다. 헌구가 내 만둣국을 힐끗 보자 만둣국도 시켜주었다. 보기와 달리 헌구는 먹성이 좋다. 떡볶이를 한 번에 두 개, 세 개씩 찍어 먹고 순대도 꿀꺽꿀꺽 삼켰다. 만둣국도 오 분 만에 깔끔하게 비웠다. 정말 아침을 먹고 온 게 맞나 의심이 든다.
“그놈들 사진 있지? 나한테 보여줘 봐.”
헌구가 음식을 다 먹을 무렵 상만이 형이 오뎅 국물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형을 봤다가 이내 젓가락을 놓았다.
“모르는 척하지 말고. 할머니한테 얘기 다 들었어. 형이, 아니 이 아저씨가 너한테 피해 안 가게 조용히 처리해 줄게. 너 괴롭히는 놈들 사진 있으면 줘 봐.”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간다. 아이는 불안한 눈으로 이번엔 나를 봤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아이와 눈을 맞추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이 사이비 문어 대가리는 왜 날 여기 데리고 와 민망하게 만드는 거야.
“사진 없어? 그럼 그놈들 반이랑 이름 대.”
상만이 형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얼굴에도 힘이 들어가 인상이 험악해졌다. 상대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된 행동이라기보다는 저절로 나오는, 저 사람 본연의 표정이다.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헌구는 손을 떨면서 휴대폰을 탁자 위로 꺼냈다. 사진 속에서 아이는 헤드록을 당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헤드록을 걸고 있는 당사자는 해맑게 웃고 있고. 어떻게 보면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름은?”
“……. 여각호.”
“얘 하나야? 다른 놈은 없어?”
헌구가 이번엔 동영상을 보여준다. 각호란 놈을 포함해 네 명이 헌구를 둘러싸고 샌드백처럼 때리고 있다. 잔뜩 움츠러든 아이는 양팔로 얼굴을 막으며 애들이 가하는 린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덤벼보라고, 꿈틀거려 보라고, 놈들이 비웃고 소리를 질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거 누가 찍었어?”
“걔들이 찍었어요. 찍어 놓고 나한테도 보냈어요.”
대답하는 헌구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입술이 살짝 떨렸다.
“알았어. 이제 학교로 가 봐. 아, 병원 간다 하고서 외출한 거지? 어디 가서 대충 시간 좀 때우다 들어가야겠구만. 우리랑 다니면 재미없을 테니까 피시방 같은 데 가서 놀다 가면 되겠네. 우린 이따 학교 마칠 때쯤 다시 올게. 오늘 몇 시에 끝나냐?”
상만이 형은 헌구에게 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아이는 꾸물거리며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주니 부담스럽기도 하겠고, 이 깡패 두목 같은 놈이 나중에 와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두렵고 불안한 마음도 들겠지.
“아, 참 있다가 나보면 삼촌이라고 불러. 잊지 말고, 알았지?”
상만이 형은 억지로 헌구 손에 돈을 쥐여 주고 보냈다. 아이는 한동안 분식집 밖에서 머뭇거리다 상만이 형이 가라고 소리치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헌구가 가고 상만이 형이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아이는 근 일 년 가까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데다 체격도 왜소한 탓에 만만한 애들 괴롭히기 좋아하는 양아치들의 안성맞춤 타깃이었던 거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지고 있다 해도 이런 문제는 늘 어디선가 일어나고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헌구는 일하느라 바쁜 할머니가 걱정할까 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침묵한 채 참고 지냈다. 그런데 집에까지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진 패거리 때문에 그만 할머니에게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들키고 말았다. 할머니는 착하고 성실한 손자가 학교생활 잘하는 줄 알고 있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무식하고 무능한 본인 때문에 손자가 놀림감이 되고 얻어맞고 다닌다고 자책하고 좌절했다. 할머니는 고민 끝에 이 일을 상만이 형과 의논했고, 형은 초창기부터 절에 다닌 신도를 위해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나의 물음에 상만이 형은, 걔들과 직접 대화해서 문제를 풀겠다고 답했다. 내가 학교에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해 순리적으로 해결하자고 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관에 알려도 제대로 된 조치가 내려질지 알 수 없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군다나 보호자인 할머니가 여유가 없어 기관을 오가며 손자에게 신경 쓰기가 어렵고,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에서 쉬쉬하거나 덮으려 할 수도 있다고 제법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단박에 해결해야 한다며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위해 첫 설법을 행한 부처님처럼 놈들에게 일거에 큰 깨달음을 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음, 이거 불안한데. 이 땡중이 말하는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통용되는 ‘깨달음’하고는 많이 다르단 말이야.
“너도 나랑 같이 가.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너 요새 약에 쩔은 중독자처럼 상판대기가 장난 아니거든. 딱 뒷일 생각 안 하고 막 사는 인간 말종처럼 보인다구. 애들이 네 얼굴만 봐도 ‘아이쿠, 내가 얘를 잘못 건들었구나!’하고 깨달음이 팍 올 거야.”
이 인간이 자기 생김새는 생각 안 하고 어처구니없이 내 외모 품평을 한다.
“이야기는 내가 할 테니까 넌 옆에서 눈 풀고 삐딱하게 있으면 돼.”
별로 끼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나를 이 일에 끌어들이려는 걸까? 이 인간이랑 엮이면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고. 그러나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단 작정했으니 이 중놈은 무조건 나를 데려가려 할 것이다.
“여기서 뭐 해?”
“아이, 깜짝이야. 이 여자, 여긴 어떻게 나타난 거야? 네가 연락했냐?”
담희 누나다. 들어올 땐 보지 못했는데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들어왔나 보다. 누나의 반려견 구응이도 같이 왔다. 생명의 은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 누나의 다리에 붙어 나와 상만이 형을 경계하고 있다. 누나는 분식집 단골로 떡볶이와 순대를 사러 왔다가 우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워낙 외양들이 독특하니 금방 우리인 줄 알았단다.
“깜짝 만남이 있을 거라더니 정말이네. 웅남이는 몸 괜찮아? 이제 이런 거 먹어도 되는 거야?”
“볼일 봤으면 가. 우리 지금 중요한 이야기 중이니까.”
상만이 형이 담희 누나를 보고 손을 휘휘 저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무슨. 누구 납치라도 하시게?”
담희 누나가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 점퍼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타로 카드를 꺼냈다. 떡볶이를 사러 올 때도 저 카드를 들고 다니는구나.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상만이 형은 카드를 보자 얼굴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떡볶이나 갖고 집에 가쇼.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 그런 거 관심 없어.”
“그러지 말고 뽑아보라니까. 중요한 일이라며. 잘 풀릴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길지 궁금할 거 아냐.”
“이게 무슨 서양 귀신이라도 씌었나. 왜 이렇게 카드를 흔들고 난리야.”
“아니, 내가 돈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해주겠다는데 튕기고 그래. 넌 싫으면 관둬. 웅남아, 네가 뽑아봐. 알지? 스스로의 마음에 집중하면서 세 장.”
상만이 형과 담희 누나는 카드를 앞에 두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냥 못 이기는 척 카드를 뽑아줘도 될 텐데 형은 끝까지 카드를 치우라고 화를 냈다. 담희 누나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권유하다 상대가 계속 거부하면 포기하면 될 텐데 끈질기게 버티며 카드를 들이밀었다. 중간에서 나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