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을 나와 담희 누나와 구응이는 집으로 가고 나와 상만이 형은 마트로 갔다. 헌구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남아 살림에 필요한 가재도구를 사기로 했다. 죽으러 가기 전 물건을 이것저것 버리는 바람에 그릇도, 쓰레기봉투도, 비누도 없어 불편하긴 하다. 형은 당장 필요한 물건 외에 다른 생활용품도 카트 안에 넣었다. 프라이팬이 낡아 못 쓰겠다며 크고 튼튼한 놈으로 골라 넣고 이불과 베개도 새 걸로 바꾸라 했다. 계산대에선 서로 돈을 내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계산원이 뒤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계산해 달라고 독촉한 후에야 이불과 베개는 사지 않는 조건으로 상만이 형이 물건값을 치렀다.
둘이서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버스에 탔다. 형은 하필 이때 똥차가 고장이 나서 생고생을 한다며 오는 내내 씩씩거렸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자마자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예전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때 같이 절에서 지낼 때도 형은 틈만 나면 잠을 자곤 했다. 새벽 예불 때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해 내가 항상 깨워야 했다. 그 뒤 형편이 나아져 내가 절을 나와 엄마랑 다시 같이 살게 되자, 형은 제때 일어나지 못해 산허 스님한테 수시로 혼이 났다. 만날 때마다 내 팔을 비틀며 가출해서 절로 다시 들어오라고 협박을 하곤 했다.
상만이 형의 자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가끔가다 벌떡 일어나 잠꼬대하는 버릇도 그대로고. 산허 스님은 왜 이리도 찾는 건지.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전에 잘하지, 항상 속만 썩이다 이제 와 후회하면 뭐 하나. 뭐, 내가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나도 우리 엄마 고생만 실컷 시키다 보냈으니까. 못난 아들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한 사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이 보냈으니까. 내가 가면 엄마는 화를 내고 슬퍼할까. 오지 말라고 돌려보냈는데 기어이 말 안 듣고 왔다고 원망하고 야단칠까. 아니면 그동안 참고 버틴다고 고생했으니 이젠 푹 쉬라고 위로하고 안아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엄마만 다시 볼 수 있다면.
시간이 되어 상만이 형을 깨웠다. 집에 있는 추어탕과 죽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둘이서 느릿느릿 학교로 향했다. 좀 늦지 않았나 싶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학생들이 하나둘 교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 큰 어른 둘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곰처럼 교문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애들의 시선이 죄다 우리에게 쏠렸다. 애써 모른 척하며 운동장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나오고 있는 헌구를 발견했다. 옆의 애들은 헌구가 보여준 사진과 동영상 속의 놈들 같다. 쟤들을 어떻게 만나나,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집에 가 버렸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헌구야.”
상만이 형이 낮게 깐 목소리로 헌구를 불렀다.
“어, 삼촌.”
헌구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의 톤이나 손짓이 영 어정쩡하다. 연기가 형편없다. 하지만 옆의 아이들은 헌구의 발 연기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범접할 수 없는 섬뜩함을 내뿜는 상만이 형에게 놀라서겠지. 애들은 후다닥 헌구한테서 떨어져 뒤로 물러났다.
“할매가 집에 빨리 오란다. 할 얘기 있다고.”
헌구가 뒤를 돌아봤다. 아이들이 어색함이 묻은 말투로 내일 보자고 인사를 했다. 헌구는 불안한 눈빛으로 미적거리다 냅다 뛰어갔다. 시야에서 헌구가 사라지자, 상만이 형이 길을 가려는 애들 앞을 가로막았다.
“니들 헌구 친구지?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요?”
아이들이 몸을 움츠린 채 서로를 쳐다보는 가운데, 각호란 놈이 홀로 눈을 치켜떴다.
“맛있는 거 사 주려고 그래. 잠자코 따라와.”
호랑이가 사냥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 애들이 우물쭈물하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각호 녀석이 상만이 형을 힐끗 본 뒤, “가자, 가지, 뭐.”라고 말하며 앞장섰다. 형은 오전에 헌구를 만났던 분식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때처럼 손님이 거의 없어 가게는 한산했다. 커플로 보이는 성인 남녀 한 쌍만 있을 뿐, 하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손님은 없었다.
형은 테이블을 붙여 네 명의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았다. 메뉴는 오전에 왔을 때와 동일한 떡볶이와 순대다. 긴장과 침묵 속에 음식이 나오고 각호가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가 맛이 없다며 침과 함께 접시에 뱉었다. 상만이 형이 입안에 있던 순대를 삼키고 살포시 젓가락을 놓았다.
“내가 너희 왜 불러냈는지 알아?”
“왜요?”
형의 물음에 각호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언뜻언뜻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은 되바라지게 한다. 나름 대장 격이라 허세를 부리나.
“헌구 그만 괴롭히라고.”
“하, 뭐야, 걔가 그래요? 우리가 자기 괴롭힌다고? 그 새끼 존나 웃기는 새끼네. 우리 걔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그냥 친구끼리 장난치는 건데. 아, 시발, 존나 오바하네.”
“장난도 치지 마. 그냥 내버려둬.”
“아, 시발, 틀딱 꼰대. 참견 오지네. 그러니까 머리털이 빠지지.”
각호의 막 나가는 언행에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던 분위기가 더 험악해진다. 나머지 세 아이는 먹는 행위를 멈추고 가만히 상만이 형을 쳐다본다. 한 놈은 웃음을 참지 못해 입으로 손을 가리고 킥킥대고 있다. 형은 평온한 표정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오른손을 탁탁 털었다. 그런 다음 가운뎃손가락을 엄지손가락에 걸어, 각호 놈의 이마 앞으로 가져갔다. 녀석이 “뭐야, 뭐야?”라고 소리치며 손을 치우려는데 형이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곧이어 ‘우당탕’ 소리가 났다. 사천왕의 딱밤 한 방에 열다섯 살 남자아이가 뒤로 쓰러졌다. 놈은 ‘으으’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안 그래도 불안하게 우리를 곁눈질하던 커플은 수저를 내려놓고 조용히 소지품을 챙겼다. 상만이 형은 각호는 내버려둔 채 다른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헌구 괴롭히지 마.”
“……. 네.”
형의 경고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다소곳이 대답했다. 각호는 끙끙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상만이 형은 한 손으로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켜 세워 자리에 눌러 앉혔다.
“헌구 괴롭히지 말라고, 어?”
각호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상만이 형을 노려봤다. 형이 이번엔 솥뚜껑만 한 손으로 놈의 양 관자놀이를 잡고 눌렀다. 신음이 억억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헌구 괴롭히지 말라고, 어?”
형의 손에 핏줄이 선다. 망가진 버블헤드 인형처럼 각호의 머리가 쉴 새 없이 끄덕인다. 녀석의 이마 한가운데가 벌겋다. 벌게지는 부위가 점점 주위로 퍼지는 동시에 부어오른다. 제발 여기서 마무리가 되어야 할 텐데, 이놈이 더 이상 객기를 부리지 말아야 할 텐데, 나중에 행여나 딴맘 먹고 일을 성가시게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 마구 샘솟는다.
“승영이 너 여기서 뭐 해?”
으, 역시나.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뒤에서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아이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남자 옆에 선다.
“선생님…….”
“학원 안 오고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이 사람들은 누구야?”
남자가 상만이 형과 눈을 마주쳤다. 일초도 안 되어 남자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세요? 승영이랑 아는 분이세요?”
처음 아이를 부를 때와는 목소리가 다르다. 시선도 우리와 맞추지 못하고 약간 아래로 향해 있다.
“이놈들이 우리 아이 괴롭혀서 이야기 좀 한 거요. 이 자식은 지가 오바하다 다친 거고.”
상만이 형은 각호를 가리키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각호 녀석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선생이라 불리는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다 자리를 뜰 타이밍을 놓쳐 엉거주춤 앉아 있는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남녀가 동시에 남자의 눈을 피했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이 남자는 왜 하필 지금 나타나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거야.
“야, 이 깡패 새끼들아, 니들 여긴 또 왜 왔어?”
아, 또 뭐지. 설마 우릴 보고 저러는 건가. 잔뜩 졸아 뒤돌아보니 담희 누나가 가게 입구에 서 있다.
“나 이제 진짜 돈 없다고. 이미 십 원짜리 동전 하나까지 싹 털어갔잖아. 아니면 나도 우리 오빠처럼 병신 만들려고?”
담희 누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더 큰 공포가 서렸다. 커플은 휴대폰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학원 선생이라는 작자는 손을 배꼽 부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벙어리가 되었다. 애들도 꼴이 말이 아니다. 다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가운데 아까 킥킥대던 놈은 눈가가 촉촉하다. 분식집 주인아저씨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묵을 꼬치에 끼우고 있다.
“어째, 꿈자리가 사납더라만, 저 여자가 깽판 칠 거라 그랬나 보네.”
상만이 형이 나를 툭툭 치며 어떻게 해보라고 탁자 밑에서 손짓을 했다. 내가 다가가자, 담희 누나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발을 밟으며 윙크를 했다. 이 행동은 무얼 의미하는 거지?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저러나 본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것임을 모르나.
“딱 한 달만 기다려주세요. 제발요.”
담희 누나는 나를 밀치고 형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돈은 꼭 드릴게요. 장기라도 팔아서 무조건 갚아 드릴게요.”
상만이 형은 대꾸 없이 담희 누나를 발로 밀어버리고 애들에게 다가갔다. 담희 누나는 연인에게 버려진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슬프게 흐느꼈다.
“헌구 괴롭히지 마. 어?”
상만이 형은 애들 한명 한명의 어깨를 차례로 토닥이며 명령을 주입시켰다. 아이들은 염라대왕 앞에 선 망자처럼 다소곳하고 얌전했다. 아니, 주님 앞에 선 순한 양 떼 같다고나 할까. 불량한 기운이 가득했던 눈이 관세음보살의 눈처럼 선량하게 변했다. 부디 지금 가진 마음이 오래 가야 할 텐데. 나중에 억울하거나 분한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깨달음이 뇌리 깊숙이 박혀야 할 텐데.
담희 누나는 우리가 나간 뒤 한동안 분식집에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떡을 썰고 있는 주인아저씨를 붙잡고서, 그 자리에 고드름처럼 얼어 있는 학원 선생을 붙잡고서 눈물의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악덕 사채업자 빡빡이와 얽힌 사연도 모자라 즉흥적으로 지어낸 불행한 가족사를 읊을 땐, 셰익스피어 연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희열을 느꼈다나 뭐라나. 모든 상황을 지켜본 커플이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되냐고 묻자,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그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산에 묻히거나 콘크리트와 한 덩어리가 돼 바다에 가라앉을 거예요.”라고 대답하며 더 큰 울음을 터뜨렸다.
상만이 형은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는 담희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로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절에 오기를 꺼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담희 누나는 “너같이 악독한 놈을 누가 감히 종교인이라고 생각하겠어? 그리고 설령 네가 스님인지 알았다 해도 함부로 입을 놀릴 깡이 있을까? 그랬다간 세상에서 바로 지워질 건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형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자신이 일을 너무 크게 키운 것 같다며 후회하며 덩달아 침울해했다. 나도 일단 상만이 형보고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차라리 그때 담희 누나가 나를 타깃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공격했으면, 빡빡이는 내 지시에 따르는 똘마니이고 내가 흑막 뒤의 진짜 나쁜 놈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야 흉악한 깡패가 되든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욕을 먹든 상관이 없는데. 아무리 심하고 모진 낙인이 찍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흔쾌히 넘겨버릴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