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관여하지 않은 나의 진로 (1)

by 아비드야

“그게 정말 맞는 해석이야? 아무렇게나 막 지어낸 거 아냐?”

“사람이 왜 이리 의심이 많니. 네가 정신을 집중해 뽑은 거면 카드는 거짓을 말하지 않아. 리딩이 마음에 안 든다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면을 내가 끄집어내서이겠지.”

“무슨 장구벌레 송충이 긁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쪽 해석이 틀린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렇게 못 믿을 거면 카드는 왜 뽑았니?”

“아니 이 여자가. 당신이 억지로 뽑아보라고 시켰잖아. 현관문 열자마자 그 거지 같은 카드 흔들어 대면서.”

“내가 누나라고 부르라 했지. 나이도 어린 게 버르장머리 없게…….”

“윗사람다운 구석이 있어야 누나라고 부르지. 너 솔직히 말해봐. 실은 웅남이보다 어리지? 억울하면 민증 까 봐.”

“아니, 얘는 아직도 참…….”

담희 누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타로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루에 몇 번이고 집에 들러 나에게 운세를 봐 준다고 카드를 들이미는가 하면, 집에 온 상만이 형이나 헌구, 때로는 같이 온 구응이를 보고 카드를 뽑으라고 할 때도 있다. 상만이 형은 대개 완강히 거부하다 누나의 등쌀에 못 이겨 한 번씩 상대를 해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다툼이 일어난다. 꿈풀이에 일가견이 있는 데다가 예지몽도 종종 꾼다면서, 타로점은 영 미덥지 않은가 보다. 아니면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스님, 그거 믿지 마요.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예요.”

헌구가 휴대폰을 보다 말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니,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타로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주의 신비와 삶의 지혜가 담긴 유서 깊은 도구야.”

“그거 다 사람들이 지어낸 거예요. 신화나 종교에서 그럴듯한 요소를 가져와서 있어 보이게 만드는 거죠.”

“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니? 그런 건 타로를 잘 모르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야.”

아주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간다. 개어둔 이불 위에 카드를 펼치고, 벽 콘센트에다 휴대폰 충전기를 꽂고,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기지개를 켜는 등 자세들도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우리 집이 동네 사랑방인 양 다들 거리낌이 없다. 헌구 이 녀석도 언젠가부터 얼굴을 붉히며 초인종을 누르더니, 이젠 천연덕스럽게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상만이 형이랑 나랑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야 애들이 진짜 삼촌으로 믿는다며 책이나 체육복도 집 한구석에 두고 다닌다. 다행히 학교는 잘 다니는 듯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생기고 각호 무리도 잠잠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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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농구 좋아하니? 내가 볼 때마다 그거 보고 있더라.”

담희 누나가 헌구의 휴대폰을 슬쩍 보며 물었다.

“잘하지는 못하고 보는 건 좋아해요.”

“농구 잘하고 싶으면 웅남이한테 가르쳐달라고 해. 쟤 농구부 출신이야.”

상만이 형이 하품을 하다 말고 끼어들었다.

“정말? 진짜야? 웅남이 너 키도 별로 안 크고 몸도 말랐는데 농구했었어?”

“아저씨 포지션이 뭐였는데요? 가드였어요?”

담희 누나뿐 아니라 헌구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하긴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누가 운동을 했다고 생각할까.

“저래봬도 스포츠 뉴스에도 나온 유망주였다니까. 자기 그릇도 모른 채 끝도 없이 올라가려고 집착하다가 망했지만.”


하하, 망했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게, 처절하고 참담하게 망해 버렸지. 나를 위해 보험설계사 일을 소홀히 하고 뒷바라지에 힘쓴 엄마를 좌절시키면서. 감독에게 돈을 찔러주고 별도의 가욋돈을 낼 형편이 안 돼 합숙소 청소와 애들 밥까지 지어야 했던 엄마의 헌신을 허사가 되게 하면서. 다른 애들처럼 보양식이나 비싼 영양제를 먹이지 못해 몸싸움에서 밀린다고 엄마를 자책하게 만들면서. 인생 최초로 맞닥뜨린 지독한 절망. 농구 선수로 성공해 엄마와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는 꿈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이야. 농구를 그만두기로 한 날, 둘이 부둥켜안고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이 길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길이 있을 거라며, 당신의 타들어 간 속은 감춘 채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기만 했다.

끝없는 집착과 탐욕. 정말 그 때문이었을까. 농구 선수로 이름을 날려야 한다는, 내 포지션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과 집념이 나를 자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던 걸까.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을 들 수 없을 때까지 연습하고, 시합에 져 감독과 선배한테 두들겨 맞고도 코트에 나와 자유투를 던진 의지와 노력이 날 망치고 농구로부터 버림받게 했던 걸까.


언젠가부터 실전 시합에서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중요한 게임에서 드리블하다 공을 흘리고 패스 미스를 하고 슛을 놓쳤다. 결정적인 순간에 꼭 넣어야 할 자유투를 쏠 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딱히 긴장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몸이 굳고 뻣뻣해져 평소 연습한 대로 되지 않았다. 여러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받고, 유명한 심리 상담가와 정신과 의사들을 찾아가 진단까지 받아봤지만,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 다들 추측하면서도 뭐가 문제인 건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용하다는 무당이 써 준 부적을 지니고 다녀보기도 하고, 상만이 형과 함께 부처님께 삼천 배도 해보고, 산허 스님과 깊은 산골의 암자에 들어가 참선과 기도도 했다. 어느 하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실수가 이어지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주전에서 밀려났다. 시합에 출전하는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러다 힘들게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 거라는, 명백하게 가슴을 조여 오는 불안과 긴장이 엄습해 왔다. 갈수록 상태는 나빠져 연습 시합에서도 제 실력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후보에서도 밀려 후보의 후보로 전락했다. 프로는 고사하고 대학 진학마저도 불투명해졌다. 매월 나가는 운동회비에 더해 지출해야 하는 병원비, 심리 상담비는 가계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 절망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하나 얻은 수확이 있다면 내 인생을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에 대해 감을 잡게 되었다는 거다. “반드시 해내려고 하면 어그러진다. 결정적인 순간에 삐거덕거린다. 꽉 쥐려 하면 빠진다.” 그 후 나름 최선을 다해 공부했지만 수능 시험을 망쳐 입시에 실패하면서, 입사 가능하다고 믿었던 회사들과의 면접에서 연거푸 탈락하면서, 밤잠 설쳐가며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에서 빚만 지게 되면서, 가설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엄마의 죽음이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암 진단을 받은 엄마는 나의 처절한 발버둥과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호강시켜 주고 싶었는데, 돈 걱정 없이 실컷 먹고 입으며 해외여행도 원 없이 다니려 했는데, 어느 것 하나 해주지 못하고 보내 버렸다. 음,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자살 실패도 더해야 한다. 굳게 마음을 먹고 꼭 해내고자 치밀하게 준비하고 시뮬레이션까지 거쳤지만 결국 실패해 버리고 말았으니.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