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상만이 형은 집에 있는 나를 끌고 어딘가로 가려 했다. 유공을 만나기로 했는데 나도 같이 가야 한다고 우겼다. 이유인즉슨 녀석을 보면 열이 뻗쳐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여차하면 내가 자기를 말려야 한단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나? 전에는 이런 일 있어도 혼자 잘만 다니더니 이젠 무조건 나를 달고 가려 한다.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귀를 닫는데 담희 누나까지 같이 가보자고 채근했다. 유공이 타일 일을 관두고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가 되려 한다는 말을 듣고 흥미가 돋았나 보다. 상만이 형과의 통화에서 유공은 적성에 맞지 않는 타일공은 관두고 유튜버가 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소속사에 발탁돼 이미 영상까지 찍었다며, 얼마 안 있으면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가 될 거라고 확신을 담아 큰소리쳤다. 상만이 형은 ‘소속사’라는 단어에서 진한 사기의 냄새를 맡았다. 분명 나쁜 놈들이 어리바리하고 귀 얇은 애를 꼬드겼다고, 이상한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사기를 치는 데 꼬붕으로 이용할 거라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다.
어차피 강제로 끌려갈 신세긴 하지만 담희 누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하고 길을 나섰다. 누나한테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 보답을 해야 한다. 생판 모르던 사람을 인연이라고 챙겨주고 돌봐주니 고마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나와 구응이를 덮치려 했던 오토바이 운전자로부터 사과와 보상도 받아 냈다. 이 양아치 같은 놈이 사고 후 경찰에 날 자해공갈범으로 신고해 병원 치료비 및 오토바이 수리비, 정신적 보상까지 요구했는데 담희 누나가 뒤탈 없이 처리해 주었다. 나는 당시 정신이 없어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구응이는 말 못 하는 강아지라 진술을 할 수 없기에, 경찰은 그놈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다. 하필 골목에 CCTV도 없던 터라 자칫 내가 덤탱이를 쓸 뻔했는데, 담희 누나가 길에 주차된 차들의 주인에게 연락을 돌려 사고 당시 상황을 찍은 블랙박스를 구했다. 영상을 본 경찰은 우리 잘못은 없다고 판단했고 오히려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를 험하게 몬 운전자를 질책했다. 담희 누나는 블랙박스 영상과 그놈이 협박했던 문자 메시지를 인터넷에 게시해 혼을 내주겠다고 선포했다. 놈은 뒤늦게 태도를 바꿔 반성하는 척하며 우리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한테 찾아와 본인의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고 나와 구응이를 위한 보상금도 주었다. 담희 누나는 구응이 몫으로 받은 돈을 내게 다 주었다. 구응이는 사건 뒤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뛰어다닌다고, 나보고 다 가지라고 했다.
“이 건물 맞지? 건물부터가 후져. 전형적인 사기꾼 소굴이야.”
상만이 형이 말한 대로 건물이 허름해 보이긴 하다. 외벽 곳곳에 떼어 낸 간판의 글자 자국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넌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평가하려 하니.”
담희 누나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카드를 꺼냈다. 나는 잽싸게 누나를 제지했다. 출발할 때도 카드를 뽑았다가 넣고, 섞은 후 다시 뽑고 하는 바람에 시간이 꽤나 지체됐었다. 누나는 안 된다고 느낌이 오는 지금 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이려 했다. 그때 웬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상만이 형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형님, 어서 오세요. 외진 데라 찾기 힘드셨죠?”
참으로 순박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다. 통통한 체격에 동그란 얼굴. 사이비 종교 전도사나 사기꾼들이 선호할 만한 얼굴이다. 목소리도 가늘고 말간 것이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형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니, 형님이 밖에선 사복 입고 다니시니까 제가 헷갈리잖아요.”
“스님!”
“예, 스님.”
“사무실은 몇 층이야? 후딱 앞장서.”
상만이 형은 유공을 떠밀고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유공은 물렁한 팔로 상만이 형을 붙들고 건물 1층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영상을 보여 준다며 가져온 태블릿을 켰다. 한 유튜버가 유튜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TV와 같은 전통 미디어 매체의 도태와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 그는 다양한 콘텐츠가 자유로운 형식으로 창조되고 소비되는 1인 미디어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누구나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가 되어 새 미디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했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 십 분 분량의 영상이 끝나자, 유공이 또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갈수록 커지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과 콘텐츠 생태계의 변화가 어쩌고저쩌고. 상만이 형은 듣는 둥 마는 둥 하품을 하다가 컵에 남아 있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올라가자.”
“형님, 아니 스님. 이번엔 절대 엎으시면 안 돼요. 전 꼭 유튜버로 성공해야 한단 말이에요. 예, 제발요.”
상만이 형은 대꾸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공은 형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대화를 먼저 시도해달라고 거의 울다시피 하며 부탁했다. 소속사가 있다는 4층에 내리자 “공(空) Network”라는 현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갈색 나무판자에 세로로 새겨진 궁서체 글씨. 이삼십 년 전쯤에 만들어졌을 법한 옛날 스타일의 현판이다. 상만이 형은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판을 유심히 관찰했다. 산허 스님이 항상 강조하시던 ‘공(空)’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들었나.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우리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형이 인사를 하는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너 여기서 뭐 해? 너도 이놈처럼 속아서 온 거야?”
“스님, 오랜만이네요.”
유공만큼이나 순박하게 생긴 남자다. 생김새는 달라 얼굴이 긴 편이지만 순한 조랑말을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이름은 ‘순감’. 한 때 유공과 한솥밥을 먹었던 다단계 회사의 동료로 상만이 형이 합숙소와 회사를 뒤엎으면서 함께 구제된 인물이라 한다.
“스님, 순감이 형이 소속사 대표예요. 못 미더우시겠지만 대표님이 이 분야 전문가에다 완전 도사거든요. 1인 방송에 대한 거라면 모르는 게 없어요. 스님이 회사 엎고 대표님은 그 뒤로 여기 뛰어들어 하루 종일 영상 시청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했대요. 이 채널은 이래서 구독자가 많고 조회수도 높고, 저 채널은 저래서 구독자도 없고 조회수도 저조하다고 분석해 주는데 족집게가 따로 없어요.”
우릴 만날 때만 해도 공포 반, 불안감 반이었던 유공의 눈이 어느새 기대와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경해 온 연예인을 마주한 팬의 얼굴 같다.
“대표님이 저보고 잘 갈고 닦으면 보석이 될 원석이래요. 자기 지도하에 열심히 노력하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주름잡을 거물이 될 거라 했어요. 전에 회사 다닐 때도 제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지녔다고, 머지않아 다이아몬드 등급이 될 거라고 계속 격려해 줬거든요. 스님이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 바닥에서 대박 쳐서 떵떵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 이번엔 제발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세요.”
“스님, 유공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특별한 포스를 지니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 세계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거예요.”
순감이 유공의 등을 토닥거리며 형에게 말했다. ‘포스’는 또 뭐야. 기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뭔가 괴이쩍고 야리꾸리한 낌새가 풍긴다. 말투도 은근하고 달짝지근한 게 사이비 종교 교주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났다고 하는데, 순감은 우연이 아니라 그날 유공을 만나기로 되어 예정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며칠 전부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영감을 받았다나 뭐라나. 자기들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고 함께 힘을 합쳐 세상을 흔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운명을 지녔단다. 유공은 순감의 말에 동의하며 상만이 형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와, 이런 맹목적인 추종이 가능하구나. 얘는 이 사람이 말하는 ‘포스, 인연, 운명’이라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없나.
상만이 형이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순감을 쳐다본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매서운 눈길을 순감은 피하지 않고 태연히 마주한다. 형이 눈을 감는다. 순감도 같이 눈을 감는다. 형이 눈을 뜨고 다시 순감을 본다. 순감도 눈을 뜨고 형과 시선을 맞춘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사천왕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어색한 침묵과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갑자기 형이 순감에게서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본다. 지금부터 때려 부수겠다는 신호인가? 상황을 봐서 자길 말리라는 건가?
“얘는 어때? 얘는 유튜버인가 뭐시기 그거 하면 어떨 거 같아?”
상만이 형이 나를 가리키며 질문을 했다. 이 땡중이 뭔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야? 혹시 이 인간을 떠보려고 날 미끼로 쓰는 건가? 순감은 당황한 기색 없이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이분은 얼굴에 혼란과 어둠이 가득하네요. 저 혼란과 어둠의 포스를 잘 녹여내면 독특한 세계를 만들 수 있겠어요. 사람들은 이분이 주는 다크한 카오스에 끌릴 거예요.”
이 작자는 또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거야? 다크한 카오스라니.
“나는요? 나는 어때요?”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담희 누나가 끼어들었다. 아니, 이 누나까지 왜 이러나. 나만 빼고 이 사이비 교주 놈한테 싹 홀려버린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날 놀리려고 미리 짜기라도 했나.
“그쪽은 됐고. 웅남아, 너 여기서 유공이랑 유튜버인가 그거 같이 해라.”
막장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을 뜬금없는 전개가 펼쳐졌다. 혼란스럽다. 나는 누구고 이곳은 어디인가.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의 경지인가.
“내일부터 여기 나와. 별일 안 해도 밥은 먹여줄 거 아냐, 그렇지?”
“반가워요. 공 네트워크의 2호 크리에이터네요.”
순감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고 얼떨떨하게 주위를 살폈다. 상만이 형이 눈을 부라리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담희 누나는 박수를 치며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유공은 나처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와 상만이 형, 순감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순감이 내 손을 당겨 억지로 악수를 한다.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는 사람들에 밀려 사무실 안으로 휩쓸려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