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오후
오랜만에 시간의 틈이 생겼다.
창밖으로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무 그림자가 벽에 그려졌고
바람은 발코니의 블라인드를 천천히
흔들었다. 모처럼 긴 여유의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그 시간을 정돈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집안일들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빨래를 널고, 냉장고 안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곰팡이 핀 타일을 닦고,
먼지가 쌓인 발코니를 쓸었다.
물걸레질을 하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내 마음을
닦는 일이구나...
행동은 반복적이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달랐다.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을 가꾸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집 안이 점점
정리되며 빛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도 한결
밝아지고 바람도 한층 따뜻하게 느껴졌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공간은 물론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차를 한 잔 끓이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쳤다. 갑자기 밀려든 고요함.
창밖은 조용했고 집 안은 한없이 맑았다.
아무런 음악도 TV 소리도 없는 정적 속에서
나의 숨소리와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음 속에 살아가고
있었을까... 알람 소리, 휴대폰 진동,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그 틈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나 자신을 잃고 있었을까...
이런 고요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시간이다. 불안도 없고...
비교도 없고...오직 나만 존재하는 작은 평화.
그것이야말로 진짜 쉼이라는 걸...
이 오후가 말해주고 있었다.
고요는 삶의 가장 부드러운 선물이었다.
고요는 치유였다. 고요의 온도는 따뜻했다.
말없이 머물러 주는 사람처럼...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소란한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로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아무것도 없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잊고 있었던 나에게 오늘...
이 정적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