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리안의 색이 스며드는 하루
카페데스틸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미 반쯤 취해 있었다.
술 때문은 아니었다.
바깥에서부터 이곳은
바람에 젖은 그림 같았다.
네덜란드 데스틸 운동의 정신을
품은 건물.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검은 선...
절도 있게 서로를 가르고
또 은밀하게 잇고 있었다.
그 틈새로 바닷바람이 스며들었다.
건물은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문을 열자 낮은 재즈가 흘렀다.
탁자 위의 가구들은 불필요한 살을
덜어낸 듯 단정했고 벽에 걸린
스피커마저 몬드리안의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공기엔 먼지가 없었다.
대신 색과 선, 그리고
디자인의 명료함이 있었다.
흰머리를 단정히 빗은 사장님이 다가왔다.
그는 65세라고 했다.
하지만 얼굴은 내 또래 같았다.
단정한 셔츠,
발끝에서 은근하게 빛나는 로퍼.
그의 발걸음 소리가 바닥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처음 오셨죠?”
그가 물었다.
“네.”
“그럼 이 집 시그니처인 오란프레소를
드셔보시죠. 그리고… 시크릿이라는
드립커피도 괜찮습니다.”
그는 오래된 재즈 음반에서
트랙을 고르듯 메뉴를 건넸다.
나는 그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잠시 후...
오란프레소가 내 앞에 놓였다.
잔에 입을 대기도 전에 향이 밀려왔다.
오크의 묵직한 그림자가 먼저 스쳤다.
그 뒤를 따라 커피의 깊은 숨결이 깔렸다.
마지막으로 오렌지청의 햇살 같은
달콤함이 번졌다.
세 가지 향이 서로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었다.
생크림과 에스프레소를 번갈아
머금으면 혀 위에서 세 계절이
동시에 머물렀다.
겨울의 서늘함.
가을의 그윽함.
여름의 생기.
나는 그 경계에서 오래 머물렀다.
잔 속의 액체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셨다.
결국 한 잔을 더 시켰다.
시크릿.
첫 모금부터 비밀을 품고 있었다.
잘 익은 과일의 부드러운 단맛.
와인의 긴 숨결.
마시는 동안 차귀도의 파도 소리와
오래된 재즈의 바늘 긁는 소리가 겹쳤다.
나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의 모든 창이 열리고
바람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사장님이 다시 다가왔다.
“브라우니도 드셔보세요.
고래 모양인데, 차귀도의 형상을
본뜬 겁니다. 디자인도 재미있고
맛도 괜찮아요.”
그는 비밀스러운 전시회
초대장을 건네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우니는 부드러웠다.
달콤함이 과하지 않았다.
단맛을 멀리하는 나조차
스푼을 멈출 수 없었다.
초콜릿 향이 천천히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바닷바람과
묘하게 어울렸다.
우리는 데스틸 운동의 역사와
그 시절 유행했던 재즈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그는 색과 선의 비밀을,
건축의 리듬을,
음악과 공간이 주고받는
대화를 설명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커피 향과 재즈 소리,
그리고 창밖의 풍경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것을 느꼈다.
루프탑에 올랐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깊고, 파도는 느렸다.
그 위에 몬드리안의 색채가 겹쳐 있었다.
파랑은 바다였다.
노랑은 해였다.
빨강은 노을이었다.
그 세 가지 색이 하루의 끝을
천천히 완성해 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단순히 커피를 마신 하루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위스키 향에 빠져들던 그때처럼~
감각의 모든 문이 열리고 세상이
잠시 나를 위해 멈춰 선 순간이었다.
행복은 이렇게 사소하게 찾아와서
이만큼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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