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메밀꽃 계절의 맛
와흘의 메밀밭이 흰 꽃으로 소복이 덮이는
계절이 돌아왔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산들거리며 춤을 추고 그 속을 걸으면
세상이 한 호흡 멈춘 듯 고요해진다.
햇살은 부드럽기만 하고 공기에는
흙과 푸른 내음이 소복하게 묻어 있다.
이 계절이 오면 나는 늘 같은 것을 그리워한다.
평양냉면. 메밀꽃의 향과 닮은 그 음식.
은근하고 맑으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맛.
하지만 제주에서 정말로 그 맛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메밀의 섬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이지만 정작 메밀의 참 향을 담아내는
집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화순평양면옥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미묘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곳의 냉면 한 그릇은 더 이상 단순한
냉면이 아니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그리움을 달래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길을 나선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화순. 길 위에는 바람이 불고 있고
차창 너머로 초록과 하얀빛이 차분히 번진다.
왕복 백 킬로가 넘는 거리지만 오히려 이 길
자체가 여행처럼 느껴진다.
한 그릇을 위한 발걸음이 결코 먼 것이 아닌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진정한 맛 앞에서
거리는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그릇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코를
스치는 것은 육향이었다. 진하면서도
결코 자극적이지 않은 오히려 자제미가
있는 향. 맑은 국물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그 냄새는 마치 오래되고
깊은 나뭇결 같았다. 간장의 은은한 내음,
그 사이로 스며드는 고기의 향. 차갑지만
따뜻하고 담백하지만 깊은 그 온도감이
입안에 먼저 닿는다.
젓가락을 집어 든다. 차가운 그릇 속의
면은 얇으면서도 단단하다. 씹을수록
메밀의 향이 은근하게 피어오르고
담백할수록 그 속의 깊이가 더욱 드러난다.
이 면과 육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국물도 투명하지만
그 안에는 긴 세월의 인내와 손끝의
정성이 조용히 녹아 있다.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릴 때마다, 흙과 바람, 그리고
누군가의 진심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고명으로 얹힌 고기 한 점은 소박하지만
위엄이 있다.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국물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조용한
조화 속에 이 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과하지 않은 맛, 그러나 오래 남는 여운.
그것은 마치 좋은 문장 하나를 자꾸만
곱씹는 것처럼, 마음속에 천천히 번져 나간다.
함께 나온 회국수는 또 다른 계절을 품고
있었다. 새빨간 양념 속에 담긴 가자미회는
바다의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새콤달콤한 양념과 고소한 메밀면이
어우러지며 한 편의 작은 교향곡을 이룬다.
입안에 퍼지는 맛은 불꽃같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다. 바다와 들판, 열정과 절제가
한 그릇에 공존하는 그 묘한 매력. 이것도
평범함을 벗어난 맛이었다.
제주에는 많은 맛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고요한 맛'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화순평양면옥의 냉면은 늘 특별하다.
국물 한 모금에 마음이 가라앉고 면 한 젓가락에
세상이 한 호흡 멈춘다. 그 순간, 비로소 깨닫는다.
메밀꽃이 피는 이유도, 내가 그 냉면을 찾는
이유도 어쩌면 같다는 것을...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한 그릇의 정직함이
삶의 소란함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와흘의 메밀밭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피어난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웃는다. 그래, 이 계절이 평양냉면을
부르는 계절이구나. 그리고 생각한다.
"이 맛이 있어서, 오늘도 괜찮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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