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부엌

스지곰탕

by 맥키아




바람이 부둣가를 거칠게 밀어내던
오늘이었다. 파도는 이유 없이 성질이
나 있었고, 공기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리게 만들 만큼 차가웠다. 그렇게
김이 서린 식당의 미닫이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미 힘든 하루를
지낸 상태였다.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세상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바람도, 소음도,
괜히 서두르던 마음도 함께 멈췄다.

식당 이름은 서쪽부엌.

이 집은 스지곰탕 하나만 낸다.
메뉴가 적다는 건 대개 용기가 필요하다.
선택지를 줄인 대신, 시간을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맑은 국물은 양지로
오래 끓였고, 간은 조선간장으로만
맞췄다고 했다. 요즘처럼 설명이
넘치는 시대에, 이 집의 맛은 말을 아낀다.








첫 숟갈은 조용하다. 입안을 놀라게 하지도
감탄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고기가
지나온 시간의 기억이 천천히 퍼진다.
투명한 국물은 비어 있지 않다. 덜어낸
자리마다 온기와 기다림, 그리고 육향이
겹겹이 쌓여 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급히 읽지 않고, 한 줄씩 천천히 펼쳐보는
것처럼 맛은 서두르지 않고 도착한다.

스지는 혀 위에서 힘을 풀고, 아롱사태는
씹는다는 감각 자체를 잊게 만든다.
과하지 않은 고기 양은 부족함이 아니라
이 집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더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아는 맛. 이 국물은 몸을
설득하지 않는다. “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속부터 먼저 데워놓는다.
그래서인지 먹는 동안 마음이 먼저
가라앉는다. 말수가 줄고, 생각도 느려진다.
식당도 사람들도 고요한 느낌이 든다.







다 먹고 나서도 조갈이 나지 않는다.
괜히 물을 찾지 않아도 되는 국물은,
요즘 들어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여름이면 메밀면을 말아도 좋겠다는
나의 말에, 주인장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합니다.”

그 짧은 문장 안에 이 집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 더 넓히기보다, 더 깊어지는
쪽을 택하는 마음.

오늘 나는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기보다,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은 기분으로 식당을
나섰다. 이런 식당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분명한 행운이다. 말없이 정직한 한 그릇으로
하루를 위로해 주는 곳. 큰 위로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래 남는 위로. 서쪽부엌이 그 자리에 있어줘서, 그날은 유난히 감사했다.

그리고 아마,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어오는
날이면 나는 또 그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갈 것이다. 세상이 잠시 멈춰도
괜찮은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서쪽부엌 #곰탕 #스지곰탕 #맛집
#착한맛집 #엄지척 #산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