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에 남은 사람들]

by 맥키아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 모든 것이 잘 풀릴 때...

그러니까 햇살이 따사롭고 계절의
기온이 적당하며 주머니 사정도
괜찮고 사람들이 내 이름을 쉽게
기억해주는 시기에는 누구든 옆에
있기 쉽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웃는 얼굴에 쉽게 다가온다.
웃음은 열려 있는 문이고 그 문 너머로
발을 들이는 건 그다지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술자리는 잦아지고 축하할 일은
더 많아지고 사람들은 그런 자리에서
나와 사진을 찍으며 ‘우리 이렇게 오래
알았잖아’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그 말이 그 순간에는 진짜 같고
진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 시절의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남아 있는가.... 하고 자문하면 손에
꼽을 수 있는 숫자가 떠오른다.

마치 햇살처럼 따뜻했던 그 시절...
너무 눈부셔서 오히려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계절이 바뀐다.

정확한 전조도 없이 삶은 고요하게
때론 폭력적으로 무너진다. 감정은
흐릿해지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의지가 필요한
일이 된다.

사람들은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용히 멀어진다.

어떤 말도 없이...확인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등 돌린다.

햇살은 사라지고 폭풍이 시작된다.

그 폭풍 속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몇 안 됐다. 그들은 더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고 위로란 단어를
남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저
곁에 있었다.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대신 뭔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내 옆에 있었고
그 조용한 존재만으로
나는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다. 한때는 매일같이 술잔을
부딪치던 사람들보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아 있었던 사람의 존재가
더 깊게 더 길게 남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결국 그 사람의 ‘빛’이 아닌 ‘그늘’
속에서 어떤 태도로 머무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햇살은 공유할 수 있지만
폭풍은 견뎌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폭풍 속에 함께
남아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시절을 지나며 관계라는 건....

‘즐거움을 나누는 것’보다 ‘고통을
견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우리는 자주 즐겁고
싶고 가능한 한 아픔은 멀리하고
싶어하지만...진짜 관계는 아픔을
통과한 자리에서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도 남는다.
먼 곳으로 이사 가거나 바빠져서
자주 보지 못해도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다.
더 자주 안부를 묻고 더 많이 기다려주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도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들이 내게 해줬던 것처럼....

폭풍은 언젠가 지나간다.

그 뒤에 남는 건 흔들렸던 마음의 기록과
그 옆을 묵묵히 걸어준 사람의 흔적이다.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믿는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따뜻함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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