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18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남편은 생명보험 들기를 거부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그 운명을 돈과 거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남편의 본심은...생명보험을 드는 순간 그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된다. 그로 인해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이해관계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생명보험을 드는 순간 그의 존재는 보험금으로 치환될 수 있다...보험금과 비교하여 그의 죽음의 시기를 가늠하는 가족들을 지켜보는 것이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시든 바나나...껍질이 온통 흙빛으로 변한...만지면 진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기 위해 법당에서 하루 종일 삼천 배를 한 여자...무모하다!


☞ 나는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자살을 할 용기는 없다. 적당히 살았다 싶으면 누군가로부터 살해를 당하면 좋겠다. 다만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구십 살이 넘은 코메디언이 죽었다. 죽기 한 달 전까지 방송에 출연을 했다. 지병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여느 날처럼 하루를 시작하려고 화장실에 가다 쓰러져 숨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죽음이다. 오래 살고, 고통 없이 죽는다.


☞ 사무실에 찾아온 보험 외판원으로부터 보험 권유를 받는다. 년 2회 납부하는 보험을 가입한다. 보험료를 입금할 계좌번호를 받는다. 외판원 앞에서 1회분을 송금한다. 명함을 받는다...6개월 후 2회분을 송금하려고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한다. 안 받는다. 보험회사로 전화한다. 그런 직원 없다고, 보험 계약 사실도 없다고 한다...당했다!


☞ 식당 종업원이 뚱뚱할수록 손님들이 음식을 더 많이 먹을 가능성이 높다?...뷔페에는 뚱뚱한 종업원이 도움이 안 된다?


☞ 술의 판매량을 늘리려면...술병을 크게 만들거나 술잔을 크게 만들 것...그릇의 크기가 먹는 양을 결정한다...크기가 다르더라도 똑같이 한 병, 한 잔으로 인식한다...단위 편향?


☞ 내가 가난한 건 참을 수 있다. 별다른 능력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남들이 잘 나가는 것은 도저히 못 참겠다. 아무리 뜯어봐도 그들이 나보다 잘 난 게 없으니...


☞ 배가 고파 먹는 게 아니었다. 뭔가 아쉬웠다. 음식물이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가면 포만감이 느껴지면서 아쉬움도 누그러졌다...위로 들어간 음식물이 출렁이며 위벽에 부딪치는 느낌...위로 들어간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위액이 분비되면, 아직은 살아 있다는, 내 안에서 살기 위한 싸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 시골 사람들의 독특한 캐릭터 유형...고집불통, 만사 참견형, 맹목적 애향주의형, 무조건 개발 반대형, 가부장적 노인형, 공개적 은둔형...


☞ 문장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단어들을 끄집어냈다...운명, 고통, 점심, 사랑, 돈, 자전거, 전기요금, 대통령...두서가 없다. 서로 관련이 없는 단어들로 만들어진 문장은 해독이 안 된다. 대통령이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점심 먹으러 갔다?


☞ 세상에는 천사 같은 부모만 있는 게 아니다...가족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가족이 항상 내 편일 거라는 환상은 배신감을 배양한다. 가족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사이다...책임이라는 당위가 개입되면 관계는 불편해진다.


☞ 어디든 먼저 나서는 사람들이 있지. 그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니? 불안하다는 거야. 그 자리나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지 못할 만큼 조바심이 나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사람...그러다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괴로워하지.


☞ 그는 가족내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너무 과중하다고 생각했다...때로는 팔짱을 끼고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여유도 필요하다...내가 생각하는 가족과 가족이 생각하는 나는 천양지차다...가족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그들 곁에 있었지만, 정작 내가 가족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나를 외면했다.


☞ 적은 내부에 있다...어릴 적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뒹굴던 친구들이 언젠가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으니 나를 잘 이해해줄 거라는, 웬만한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지지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뢰감 같은 게 무너지면 타격은 더 심하다.


☞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이라는 전제를 달고 말을 시작한다. 마치 나 역시 그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이,,,


☞ 어른이 할 만한 질문을 용케 생각해냈다는 뿌듯한 느낌...어른스러운 질문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어른스러운 질문을 고르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려보았다...질문은 답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비웃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 최대한 몸을 숙이고 행동반경을 줄여서 부모님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는 게, 서른이 다 된 백수가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이다...백수 생존법...적게 먹는다, 오래도록 입는다, 말을 줄인다, 눈에 띄지 않는다, 불편해도 내색하지 않는다, 말대꾸 하지 않는다, 항상 심부름거리를 찾는다...


☞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뱉었던 말들 중에 다시 주워 담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될까?...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회사에 다니는 내가 했던 말들...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해야 했던 말들...


☞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단순함에 할 말을 잃었다...그렇게 살아왔구나. 별다른 고민이나 갈등 없이,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남들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람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 바닥에 널린 글자라면 허리를 굽혀 주워 담을 수도 있겠지만, 바닥에 널린 단어들을 주워 문장을 만드는 게 아니다. 단어는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내가 머리를 굴려 못 살게 굴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적당한 단어를 꺼내기 위해 비슷한 단어들을 동원하여 그 단어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 공격을 한다.


☞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연료가 다르다...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동력들...삶을 계속하기 위한 원동력...생존을 위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서식지를 떠나 사냥을 가는 원시인들처럼, 그는 아침마다 출근이란 걸 했다.






⁂⁂ 최고의 글쓰기는 고쳐쓰기다. - E.B. 화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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