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19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 누가 농담을 하면 웃기지 않아도 웃어주는 게 예의야. 나는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어...아들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인데 왜 웃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들이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었다....내가 살아온 세상과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상상도 못할 만큼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들에게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에게 혼란스러움만 줄 뿐이다.


☞ 그는 여자를 사귈 때 나중에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여자인지를 우선 가늠했다.


☞ 아이들의 이탈행동이 가족 공동체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그래서 가족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려 위기라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가족 공동체의 속성을 복원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 표현의 방법...그는 적대적이다 or 그는 적대감을 드러냈다...전자는 그에 대한 확정적/단정적 판단이지만 후자는 일시적/현상적 판단이다...그런데 그가 적대적이라는 것을 내가 단정적으로 말해도 되는 걸까?


☞ 단어들이 머릿속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데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날개가 달린 듯 이리저리 흩어져버린다. 단어나 문장이 내 머리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문장은 머리에서 생성되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졌다...


☞ 결국은 죽을 텐데, 좀 편안하게 살면 안 될까?...아웅다웅 욕심 부릴 필요는 없잖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생각이 그의 삶의 향방을 알려주었다.


☞ 욕망을 파괴한다...욕망을 관리하다...욕망을 확장하다...욕망을 날것으로 드러내다...욕망은 생명력이다...욕망하지 않는 자는 행동하지 않는다...‘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사람들이 보통 착각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생각할 거라는 것. 때로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모른다...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 노동을 통해서 먹고 살지만 노동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날로그적이고, 육체적인 느낌 때문일까?


☞ 집으로 배달되어온 신문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사무실에 출근하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신문을 들추는 게 습관처럼 행해지던 시절도 있었다...


☞ 나이가 만들어 놓은 기억력의 감퇴를 늦출 수 있는 것은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뿐이다...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기억력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붙잡아 둘 수는 있다...


☞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에는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노트북, 자동차, 의자, 우산, 가마솥...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형용사다...늙수그레하다, 게슴츠레하다, 고풍스럽다, 밉다, 성글다, 짜증스럽다, ...


☞ 오래 전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이름보다는 별명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별명이 이미지와 함께 기억에 저장되기 때문이다...내 별명은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부엉이’였다.


☞ 돈이 있어야 내세울 수 있는 취향이라면 별로 관심이 없다...라면을 끓이면서도 가장 맛있는 스프의 양을 고집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주장할 수 있다.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의 공통점...친절하다는 느낌을 주도록 노력한다. 피곤한 모습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손님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약간의 인내심을 보인다...


☞ 거짓과 허구는 구분되어야 한다. 거짓은 반대편에 진실 혹은 사실이라는 분명한 비교점이 있다. 허구는 그런 게 없다. 굳이 따지자면 현실이라는 비교점을 내세울 수는 있겠지만,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허구를 모두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시간의 용도...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한 시간...책을 읽기 위한 시간...몽상을 위한 시간...친구를 사귀는 시간...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시간을 달리 쓰면 내 인생이 달라진다.


☞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을 견디는 재주가 있다...그는 침묵이 거북해서 먼저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침묵을 즐기는 듯하다...침묵을 즐기는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 오래 산다고 삶이 풍부해지고 넉넉해지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살아보지 않은 삶을 많이 사는 게 더 중요하다...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누군가는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아서 방랑의 길을 떠나기도 한다...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왜 살아야 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왜 살아야 했는지를 알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


☞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나의 존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증명/확인되어야 한다.


☞ 과거의 기억이 때로는 삶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기억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내 삶을 갉아먹는 기억에 저항하지 못한 채 자학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나이를 먹는다고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은 아니다...죽음이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온다는 예감은 어떤 느낌일까?...거부한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삶이 하루 지나가면 죽음은 하루 다가온다.


☞ 노래가사처럼 하루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행복이 불쑥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 뒤뜰에 벚나무 2년생을 심었다. 잎 하나 없는 나무 막대기끝에 뿌리처럼 생긴 게 달려 있다. 이 나무에서 줄기가 생겨나고 그 줄기에서 벚꽃이 피고 질 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육신이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의식이 제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행복할까?...선택을 할 수 있다면, 육신과 영혼 중에 어느 게 먼저 망가지는 걸 골라야 할까?...망가진 육신 속에서 영혼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영혼이 사라진 육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소설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거짓말로 진실을 드러낸다. - 스티븐 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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