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미래가 뻔히 예상되는 삶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안정성이 있다는 말은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다. 자신이 맞이할 미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면 그런 삶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 가족의 생계를 왜 남자가 책임을 져야 해?...가부장제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남자에게 가장이라는 책임을 씌우는 것도 불합리한 게 아닌가?...가부장제는 나쁘다고 하잖아? 그런데 왜 가족의 생계는 남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해?
☞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고는 집안에 있는 달력을 치웠다. 텔레비전이나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 생활의 리듬도 일정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떠올릴 수 있는 것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도망쳤다.
☞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보다 돈이 되고 쌀이 되는 생각을 해라...그는 혼자 넘어지지 않는다...그는 어깨 위에 불행을 잔뜩 짊어지고 다닌다...그가 죽기 전에 불행의 짐을 벗을 희망은 없어 보인다...내일 당장 죽더라도 왜 세상이 자신에게만 이렇게 각박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삶은 개별적으로 거대하다.
☞ 술이 약하다고 술을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술을 좋아한다고 술이 세다는 말은 아니다.
☞ 나이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다...화석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노인...기억도 오래 되면 머릿속에서 화석이 된다...너무 오래되어 화석화되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발굴되기 시작했다.
☞ 젊은이들의 ‘노오력’을 유도하기 위해 서울역의 노숙자나 폐지 줍는 노인이 필요하다...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누군가는 노숙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국가는 가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부각하여 능력주의의 신화를 공고히 하려 한다.
☞ 직장 생활에도 포식자가 있었다. 업무를 하느라 매일 얼굴을 부딪치는 과장은 상위 포식자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를 부장은 사무실 내의 최상위 포식자다.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부장을 잡아먹는 포식자도 있을 것이다...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돌멩이라도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그게 그거다.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나름의 음정, 박자를 조금씩 달리 할 뿐이다.
☞ 가족을 위해서 돈을 만들어 와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기본 역할이다...서식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눈을 부릅뜬채 두리번 거려야 한다. 때로는 허리를 깊게 숙여 세상과 타협해야 하고...
☞ 직원이 다가온다. 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앉아서 결재를 하는 게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직원을 배려하려는 마음 때문은 아니다. 김은 탈모로 하얗게 비어버린 정수리를 직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 밥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안 해도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은 주로 밥을 잘 먹고 있지만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 언론은 가짜 뉴스를 통해 사회에 불안을 퍼뜨리는 바이러스다...사회적 불안을 연료 삼아 가짜 뉴스를 확산시킨다...가짜 뉴스에 감염된 사회에 필요한 치료제와 백신...
☞ 조직에 얽매여 있다는 착각...자신이 아무리 갑질을 해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상대의 약점을 알고 있는 자의 잔인함 같은 거...예전에는 그런 착각이 어느 정도는 작동을 했다. 회사가 한 사람의 일생을 책임져주던 시절이었으니까.
☞ 신체포기각서...자신의 신체를 포기한 사람들...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자신의 신체를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은 사람들...그 상품을 사려는 소비자가 존재하는 사회...
☞ 어느 날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세상이었다. 굳이 이루어야 할 목표도 없다. 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역사적 사명 따위도 없다. 그냥 살다가 때가 되어 다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사람들처럼 아웅다웅 살아야 할 까닭을 찾을 수 없었다...퇴직을 한 후 그는 자신만의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어. 삶에는 바람직한 표준 매뉴얼 같은 게 있다는 것...그가 지금부터 할 일은 그 믿음에 오줌을 갈기는 것이다.
☞ 내일이 없다고 생각해 봐. 내일은 헛된 희망이다, 내일은 오지 않는다...그러면 세상이 달리 보여.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뭐라도 하려고 할 거야. 사과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가족들과 잔치를 벌일 수도 있고, 읽고 싶었던 책을 미친 듯이 읽을 수도 있어. 그런데, 네가 지금 매일 출근하고 있는 회사에는 갈 생각을 하지 않을 걸?
☞ 세상은 자기가 해석할 수 있는 만큼만 살아갈 수 있다...해석이 불가능한 세상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 치매끼가 있는 노인...본인의 동의 없이 가족들의 의사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다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노인...정신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다. 요양원도 가고 싶지 않다. 집에서 죽고 싶다...가족들은 동의하지 않는다...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 동전을 넣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자판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동전을 넣어야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반응을 기대하려면 뭔가를 해야 한다...발길질을 하더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하는 게 없으면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 있잖은가.
☞ 보호자가 없으면 수면 내시경도 받을 수 없다?...혼자 사는 노인이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한다...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을 하나 사야 하나?...이 나이에 무슨 보호자가 필요한가?...이 나라에 네 명 중 한 명은 혼자 사는 가구라는데, 걔네들은 내시경 검사를 수면으로 받을 수도 없다는 건가?
☞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감정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자기 중심적인 사람...자기만 사랑하느라 타인의 시선과 감정에는 무감각한 사람...
☞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세상의 표면에 불과하다. 그 껍질을 뚫고 들어가 세상이란 것의 본질을 알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세상의 표면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
☞ 세상의 온갖 소음은 내 머릿속에서 화면으로 재생되었다...소음은 영상으로 변환된다...새소리를 들으면 내 머릿속에는 나뭇잎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작고 앙증맞은 새의 영상이 떠오른다...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면 그 새가 냄직한 울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 부사는 항생제와 같은 것이다. 한두 번은 확실한 효과가 있지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긴다. - 정유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