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규격화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사람들이 남들과 비슷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이 아둔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런 삶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검증된 안정된 삶의 유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의 뒤를 따라가면 노다지를 주울 수는 없지만 인생이 고랑창으로 꼬라박힐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 너는 왜 매번 나랑 생각이 다르지?...너랑 나랑은 얼굴 생김새도 다르잖아...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그런데 사람마다 외모가 다르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면서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지. 외모가 다른 만큼 생각도 제각각이거든. 너랑 생각을 맞추기 위해서 내 생각을 ‘성형’할 수는 없잖아.
☞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자율적인 판단으로 하루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의 일상생활 중에 숨을 쉬는 것 말고 타인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신도 인간의 호의에 의지하여 존재하건만, 다른 사람 없어도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 네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순전히 네 탓이라고 세상은 말한다. 성공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들보다 노력을 덜 해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남들은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하냐고 타박한다. 그런 세상에 똥침을 먹여라. 내게 주어진 능력만큼 최선을 다해 했는데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책망하지 말고 세상을 욕하자. 세상 굴러가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네가 형편없어서 그 모양 그 꼴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세상이다. 애꿎게 자신을 탓하며 속절없이 허물어지지는 말자.
☞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내부에 비어 있거나 부족한 공간을 만들어 둔다. 그런 공간을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때, 만든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권태를 느낀다. 권태는 이미 꿈을 이루었거나 이룰 가망이 사라졌을 때 찾아온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달성이 가능한 의미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을 던지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권태가 해소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더라도 권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인간의 속성인지도.
☞ 주위 사람들로부터 ‘생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정말로 최소한의 사리분별도 못하고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한 부류다. 자신이 무얼 하는지, 왜 하는지 모르고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른 부류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다.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아, 평균적인 사람들 눈에는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위험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 요사이 젊은이들의 직업윤리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정규직이 되는 것, 비정규직이 정규직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간에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살아남는 것도 중요한 직업윤리다...정규직이 되는 순간, 특히 공무원이나 공기업처럼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로 타의에 의해 중간에 그만둘 위험이 없는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직업윤리는 완성된다. 그들에게 회사생활을 하는데 더 이상의 윤리는 의미가 없다. 직장에 대한 충성심, 동료에 대한 예의와 애정,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 자신의 존재 근거이기도 한 이해 관계인들에 대한 배려 등은 거추장스러운 굴레라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 건 예외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니까.
☞ 매사에 계획적인 그는 감정표현 매뉴얼을 만들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자신의 감정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모든 감정을 정도에 따라 대여섯 단계로 나눈 다음 각 단계마다 적절한 강도의 표현 방법을 미리 설정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노라면, 모욕감을 느꼈을 때, 누군가 가족들을 비난할 때, 아내가 바람을 피웠을 때, 아이들이 사고를 치거나 맞고 들어왔을 때, 비상금으로 마련한 주식이 하락하여 아까운 돈을 날렸을 때 등등의 상황으로 나누고 그 단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 줄 것인가를 매뉴얼처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을 때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던지거나 거두절미하고 상대의 면상을 머리로 박아버리는 행동으로 그가 화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으로. 그래야 자신이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통제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았다.
☞ ‘기본소득’이라는 게 있단다. 일을 안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돈을 준다는 것인데, 이기적인 존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정책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이 일만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걸 기를 쓰고 반대하는 사람이 많단다. 이해가 잘 안 된다. 내가 모르는 심오한 반대 이유라도 있는가 했는데 그건 아니다. 아무 일 안 해도 먹고 살 돈을 준다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노동 의욕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생기고, 결국 사회는 온통 놀고 먹는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들은 대부분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기막힌 일이다. 어쨌거나 뭐라도 해야 돈을 주겠다면(하긴 그게 자본주의의 규칙이기는 하다) ‘행복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면 어떨까. 방법은 간단하다. 기본소득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을 이렇게 저렇게 써서 행복할 예정이라는 계획서를 제출하게 한다. 대충 심사해서 그들에게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돈을 준다. 나중에 그 돈을 써서 이만큼 행복해졌다는 ‘행복보고서’를 작성하여 지출내역서와 함께 제출하게 한다. 그러면 이 사회에 행복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규칙도 어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 영국이라는 나라에는 정부에 ‘외로움부’라는 부처가 있다고 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고독사를 막고 사회와의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정말 낭만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다. 외로움을 정부가 해결해준다는 발상은 엉뚱하지만, 그래도 국민들을 위해 뭔가를 해보려는 자세가 기특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부에 어떤 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해 의견을 모은다면 권태관리부, 행복육성부, 고독방지부, 비정규직위로부, 낭만개발부, 홀아비지원부, 분노제어부, 긍정적감정창조부, 장난감개발부, 인류멸종방지부...같은 것들을 생각해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 첫 번째 챕터에서 한 자루의 총이 벽에 걸려 있다고 썼으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총을 사용해야 한다. - 안톤 체호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