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의 글쓰기
☞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한 마스크 착용의 긍정적 측면...표정 관리에 신경을 덜 써도 된다. 표정은 대부분 얼굴 근육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다. 그 표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 표정을 쉽게 숨길 수 있다. 눈으로는 환하게 웃으면서도 마스크 속에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화를 낼 수도 있다. 앞에 있는 상대방은 알아채지 못하도록 혼자 궁시렁거리기도 쉽다.
☞ 아무리 특별한 상황이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착되면 견고한 질서가 된다. 한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문을 제기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허공에 손바닥을 휘둘러 파리를 잡더라도 꼭 무언가를 해야 안심이 되었다.
☞ ‘캄캄한 방 안에서 작은 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올바른 문장일까? 문장 구조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 방 안이 어둡다면 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이 보일까? 개나 고양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은 벌레가 보일 리는 없을 것이다. 명백한 오문이다.
☞ 노숙자나 장애인 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을 보급하겠다고 하면 주거 환경이 나빠진다며 주변 주민들이 반대하는 세상이다. 하물며 청년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해도 우범지대가 되어 집값이 떨어진다며 집단적으로 시위하는 세상이다. 월세로 먹고 사는 건물주들이 많다고 부근에 임대 아파트를 짓지 말라고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들 살아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영어단어다. 도무지 뜻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담배의 제품명이라는 설명과 함께, 시커멓게 그을린 폐가 그려져 있는 담뱃갑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생활이 바뀌면 예전에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기억에서 멀어져간다.
☞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남녀가 결혼해서 두 명의 자녀는 낳고 길러야 사회 전체적으로는 ‘본전’이 되는 거야. 현재 수준의 인구가 유지된다는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한 명이 채 안 되잖아. 1 플러스 1을 했는데 2가 아니라 1도 안 되니 인구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큰소리쳤던 사람은 쪽팔려서 어떡하냐?
☞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이라고 명칭만 바꾼다고 건강이 증진되는 것일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의료보험은 질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사후적인 보험의 의미라면 건강보험은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사전적 의미가 강조된다고 할 것이다...한때는 의료보험이라고 불렸다. 질병 치료와 관련된 보험이니 질병보험이라 불릴 만도 한데, 아마도 어감이 안 좋았나 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건강보험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마치 명칭이 바뀌면 아픈 사람이 줄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 독재정치라고 하면 대부분은 권력을 장악한 한 명의 독재자가 있고, 그가 법을 무시하고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독재자가 꼭 한 명일 필요는 없다. 예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우대 정치처럼 하나의 계층이나 계급이 집단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도 독재정치다.
☞ 가짜 정치인은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진짜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한다...누군가를 보호하려면 보호받는 자보다 우월한 힘을 가져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은 상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
☞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생각은 쓸데없다. 생각은 주관적이라 갈등만 불러일으킨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 그는 어떤 문제든 단순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복잡한 문제는 복잡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문제를 단순화시키면 해결 방안도 단순해진다. 곁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내고 핵심만 가려내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다.
☞ 화장실에서 남자들이 소변을 볼 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지의 혁대를 풀어서 바지와 팬티를 통째로 내리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바지 앞 지퍼만 내려 볼일을 보는 사람이다. 시간이 나면 두 부류의 성격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해 볼 생각이다.
☞ 세상에는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 질서를 묵묵히 지켜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질서를 만드는 편에 선 적이 없었다. 누군가 만들어 준 질서를 따라가는 데 삶의 대부분을 허비했다.
⁂⁂ 나는 마지막 원고에 초고의 10퍼센트 이상이 남아 있으면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 정유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