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한 斷想. 44

- 중년의 글쓰기

by 둘리아빠

고문의 역설이랄까 그런 게 있거든. 고문이라는 게 뭔가를 자백받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 그런데 고문을 시작하자마자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순순히 털어놓게 되면 왠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되지. 이놈이 고문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죽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고문을 견디다가 결국 자백을 한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을까? 이놈이 고문에 못 이겨 거짓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나도 몰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판단해야겠지.


세상에 절대적인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적어도 그 행위를 저지르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악행을 저지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나이가 들면 몸 안에 숨어 있던 죽음의 징표들이 주름살이나 살비듬, 검버섯 같은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통보하는 것처럼.


그는 상체에 비해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걸을 때면 마치 쥐가 다리 네 개를 재게 놀리며 종종걸음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GPS 기술을 이용해서 피자 배달부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노출해야 하는 피자 배달원의 기분은 어떨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상대를 탓했고, 상대가 명백히 잘못이 없어 보이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책임을 돌렸다.


너는 제발 생각이란 걸 하지 마!. 네가 머릿속에서 생각의 회로를 돌리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구.


그는 아내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바보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기분 나쁜 느낌은 결혼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었다. 너무 익숙한 감정이다 보니 아내가 없을 때도 그는 바보처럼 굴 때가 많았다.


그는 매사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꼬박꼬박 이의를 제기하지만, 알맹이는 없다. 사실 그의 의견이라고 할 만한 게 특별히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회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식이었다. 그것도 꼭 상대의 발언을 반박하는 형태로. 그러면 자신의 존재가 두드러져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각지대란 단어에서는 뭔가 음습한 분위기가 풍긴다. 바퀴벌레와 지네가 우글거리고 쥐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을 것 같은.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하면서도,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와 함께 ‘집세와 공과금’이 든 봉투를 남기는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궁금하다. 혹시 집단적 가스라이팅?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 쓸데없는 짓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나눌 수도 없다. 비록 가족일지라도.


그에게 마흔 살은 시간표에도 없는 노선버스 같은 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정거장이라는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곳일 수도 있고, 기다림의 장소일 수 있고, 오랜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안주할 곳을 찾는 곳일 수도 있고, 반대로 기나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지점일 수 있다...정거장은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장소로 기억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전에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는 장소일 수도 있다...정거장이라도 버스 정거장 보다는 기차 정거장이 뭔가 있어 보인다.


아빠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부드러운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화를 내는 법도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배워야 한다.


편의점에서 50원짜리 비닐봉투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사소한 것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기도 한다.


꽃가루가 날리는 봄마다 그는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한다. 안구 부위에 모래가 끼어 있는 듯 사각거리는 이물감과 통증이 잦고, 눈 주변이 두꺼운 안대로 눌리는 듯한 묵직한 느낌과 함께 심하면 머리까지 아프다. 손수건에 각얼음을 몇 개 담아 싸고 눈부위에 대어준다. 눈 가려움이 조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병의 원인도 모르면서 일단 수술부터 하자고 덤비는 의사를 보는 듯하다.


그는 답변이 궁하면 침묵하는 버릇이 있다. 그에게는 침묵도 의사 표현의 방식이다.




⁂⁂ 첫 문장과 첫 문단은 모든 소설의 성취 정도를 즉각 예측하도록 일러 주는 풍향계다.

- 김원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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