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과 글

by 화이불류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자신조차도 보기 민망해서 세상에 내놓기에는 마냥 주저되기만 하는 이야기를 애써 하려는 이유는 뭘까?

심지어 때때로 글을 쓰는 도중에 '무위(無爲) 될 게 뻔한 시도'라는 회의감이 스며들면서 쓰려는 동기와 의욕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아예 때려치우자니 미련이 남을 것 같고...

그렇게 체념과 시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쓰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며칠 전 보험상담사와의 통화가 있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말씀하시면 제가 못 알아듣십니더."

"조금 천천히 말할까요?"

말의 속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듣는 이의 이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뱉어내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의 남발이 문제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을 잠깐 빌자면 말과 글은 소통의 수단이다. 이때 소통에서의 용어는 그 용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일치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한다. 말하는 이의 연상 세계와 듣는 이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된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지칭한다. 그 언어가 지칭하는 것에 대한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일치된 이해는 제대로 된 소통의 우선 조건이다.

설명한다는 것은 말하는 이가 듣는 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듣는 이에게 '새로운 것을 옛 것으로', '생경한 것을 이미 익숙한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혼자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훔볼트(K. W. Humboldt)에 따르면 언어는 말하고 들음으로써 각자 개인적으로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서로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사회화(객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해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 말하고, 그것이 다시금 타인의 언어를 통하여 선명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올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쨌거나 말과 글은 누군가를 대상화한다. 심지어 독백과 일기조차도 자신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말과 글은 타인에게 이르기 전에 반드시 먼저 자신을 거친다.

내가 하려는 말들은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관념이 담긴 말들은 타인에게 명료한 소리가 되어 전달되는가?

그렇게 전달된 말들이야말로 다시금 타인을 울린 뒤 선명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렇게 말은 서로를 동시에 이해시키는 눈높이에서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생명력을 지닌 매개가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