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과 교수님과 상담이 있는 날이다. ‘학생성장 Level Up 진로취업상담’, 학기마다 하는 상담이지만 실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이름은 거창한데...막상 가보면 1시간 정도 지도교수님과 커피한잔 마시면서, 요즘 지내고 있는 일상들을 나누는 정도다.
사실 교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도 되고 해서 두어 번 정도 참여할 때는 괜찮았지만, 상담이 거듭 될수록 매번 느끼는 것은... 정말 진로에 도움이 되거나 취업에 유익한 정보를 나눠보진 못했다는 점이다.
같은 학번 친구나 선후배들도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의례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상담이 나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부여한 교수님들의 ‘과제(?)’라고 한다.
교원평가제도에 학생상담 횟수를 의무적으로 채워야, 교수님들도 차곡차곡 점수(포인트)를 받아 승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 똑같은 교수님인줄 알았는데, 조교수-부교수-정교수, 계약 교수님들도 있고, 생각보다 교수님들도 종류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만 과제를 하는 줄 알았는데, 교수님들도 과제가 있다고 하길래 조금 놀랐다.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 학교 도서관 앞을 지나다 우연찮게 지난해 졸업한 선배들을 만났다. 졸업한 줄 알았던 몇몇 선배들은 졸업연기를 했다고 한다.
졸업을 했든 졸업연기를 했든,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하는 건 똑같다. 무리들 중 선배 한명은 그래도 우리 과(전공)에서 탑을 했던 분이다. 학과 성적도 좋고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교수님, 후배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분이다.
“선배, 잘지내셨죠?, 저도 이제 3학년이라 취업도 그렇고.. 고민이 많아져서.. 선배님께 한번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그래 반갑다. 잘지냈지? 졸업했는데 아직 자리를 못잡아서, 후배들 보기가 좀 민망하네. 너도 나처럼 되지 말고, 취업준비 열심히 해. 졸업해보니 알겠더라... 대학은 많고, 한 해 한 해 쏟아지는 졸업생들도 주변에 너무 많아. 너무 학교 안에서만 시각을 좁히고 지내지 말고, 대외활동도 관심가지고... 아무튼 다음에 또 보자” 선배의 말끝이 조금 흐려진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마치고 교수님 연구실로 향했다. 대학 캠퍼스 곳곳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띈다.
‘입학하면 취업까지 책임진다’
든든한 동반자 00대학교
사실 저 현수막 문구는 고등학생 때 입학상담을 받으면서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00대학은 ‘학생성장 Level Up 진로취업상담’ 제도와 ‘특성화 프로그램’, ‘다양한 장학제도’들로 학생 한명, 한명, 취업을 확실히 지원하고 보장합니다. 총장, 교수, 직원분들이 학생들 진로와 진로취업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입학팀인지, 홍보팀인지 대학 관계자분이 자신 있게 말하던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똑똑...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책상 위에는 갓 출력한 듯 보이는 상담학생들 명단이 적힌 프린트물과 전공관련 논문 페이퍼들만 수북이 쌓여있다.
“어 그래, 동연이 왔구나”
“아.. 교수님 동연이는 아마 다음 주 상담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 미안하다. 교수님이 지금 조금 바빠서, 이름을 헷갈렸네. 이름이 뭐더라...” 교수님은 조금 전 들어오면서 봤던 상담명단이 적힌 프린트물을 집어 드셨다. 아마 내 이름을 찾아보고자 하시는 듯했다.
“그래, 아무튼.. 시간이 별로 없으니..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니? 벌써 3학년이라 슬슬 취업도 준비해야 되고 걱정이 많아지겠다.”
“네, 교수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교수님께 취업관련해서 상담도 드리고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예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었는데.. 저는 졸업 후 전공을 살려서 △△기업에 취업하고 자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입학할 때도 그렇고 지금 우리 학과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던데, ‘졸업 후 진로’, ‘동문 사회진출 현황’을 살펴보면 마침 △△기업 입사하신 선배님이 있더라구요.”
“아 그래? 그게 언제더라.. 아마 한 10년~12년 전쯤에 졸업생 한명이 있을거야. 그 친구 열심히 준비했지. 학과 성적도 괜찮았고,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다더라.”
3년 전 수험생일 때도 그렇고 대학 입학 후 신입생일 때도 그렇고, 학과 홈페이지가 늘 최신 업데이트가 되니... △△기업 입사한 선배의 얘기도 당연히 최근 취업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10년~12년 전 쯤 졸업생, 단 한 명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사실 △△기업이 좋긴 하지. 교수님 지인도 거기 다니고 있는데 연봉, 복지가 상당히 좋더라. 지난번 술자리에서 한번 물어보니 요즘은 신입사원이 다~ 인(in)서울 학생, 해외대학 출신이라더라. 입사경쟁률도 상당하고. 사실 우리 대학 학생들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 자 그럼 오늘 상담은 이쯤에서 마치는 걸로 할까. 오늘 교수님이 학회 일정이 좀 있어서. 그리고 이번 학기 상담은 이제 횟수 총족 다 됐으니 그만와도 된다. 그동안 상담 참여하느라 수고했다.”
교수님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단과대학 건물 앞에 힘없이 부대끼는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