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봄의 도시 달랏, 오후3시에 비가 내리는 우기
8월 둘째 주, 달랏여행이 벌써 그립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직장으로 돌아온 지 딱 5일 차부터
두통이 시작됐다. 휴가 기간에는 최대한 머리 회전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지냈는데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멀티플레이어가 됐더니 바로 방전이다.
휴가로 에너지 충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5일 만에 바닥이 드러나 너무 슬프다.
한 여름의 꿈처럼
벌써부터 아득한 8월 둘째 주를 기억하고자 달랏 여행을 떠올려 본다.
달랏 공항은 현재 공사 중이기 때문에 비행기 직항이 없다.
즉, 베트남의 다른 도시를 경유해서 이동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휴양지 냐짱이 달랏에서 가까워 비행기 편이 많다.
냐짱 소재 캄란 공항을 통해 입국해 달랏으로 넘어가는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 표를 찾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티켓 끊는 일을 늦장 부렸더니 가격이 너무 급상승한 거다.
게으르면 돈을 더 낸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냐짱 IN 냐짱 OUT이 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값싸게 다녀오기 위한 차선으로 냐짱 IN 호찌민 OUT으로 결정했다.
계획에 없던 호찌민 도시까지 구경하게 된 셈이다.
한 나라, 두 지역 여행만 주로 다녔지만
이번 여름휴가는 세 지역이 되었다.
휴양지와 도시를 모두 아우르는 여행이라 의도치 않게
내가 휴양지 스타일인지, 도시 스타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잘 모르겠다면
휴양지와 도시를 섞어 일정을 만드는 것도 방법인 듯하다.
달랏으로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시원하기 때문이다. 고산 지대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시원하고
다른 베트남 지역보다도 선선하다. 더위를 무척 싫어하는 내가 안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달랏의 아침은 햇살이 가득하다. '아 여기도 동남아긴 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따뜻하고 상쾌한 날씨, 가벼운 옷차림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면 좋다.
선글라스가 있다면 햇빛을 피할 수 있어 딱 알맞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후 3시가 가까워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빛나던 햇살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바람도 싸늘해지고, 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햇빛 사이로 흩날리는 비가 아니라, 빛을 완전히 가린 채 내려앉는 비다.
고산 지대라 그런지 한 번 비가 내리면 아침에 입었던 여름옷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며 버티기 힘들어진다.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면 에어컨 바람까지 더해져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물론 나는 더위에 무척 약한 상태라 그런지, 늦가을을 느낄 수 있는 피부의 감각이 좋았다.
그래도 감기 걸리지 않게 가방에는 늘 얇은 바람막이나 겉옷을 챙겨 다니면 좋다.
재밌는 건, 달랏에서 머문 나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3시쯤 비가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매번 그 사실을 잊고, 우산을 챙기지 않은 채 밖으로 나서곤 했다.
캐리어에 우산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먼저 '외국에서 테니스 치기'를 로망으로 삼은 남편과 나는 테니스채와 공을 챙겨 왔다.
한국에서는 테니스 코트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데 달랏의 리조트에는
테니스 코트가 딸린 곳이 꽤 있어 눈치 보지 않고 테니스를 맘껏 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비 내리는 오후 3시를 눈치채지 못한 우리는 호기롭게 오후 3시에 테니스 코트를 예약했다.
왜 호텔 직원은 우리를 막지 않았을까? 아니면 우리가 우중 테니스를 즐긴다고 생각했을까?
결국 우리는 준비운동으로 가볍게 몸풀기만 할 수 있었다.
본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폭우를 만난 건다.
심지어 우산도 없었다.
테니스 코트와 숙소까지는 정말 멀었다.
비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가림막도 없는 상황.
비를 쫄딱 맞을 것인가. 아니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여기에 갇힐 것인가.
말 그대로 혼비백산의 상태였다.
베트남 유심을 메인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전화는 한국유심(보조)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리조트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구글지도에서 리조트를 찾아 '전화연결하기'를 찾아 눌렀더니
신호음이 울렸다! 이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짧은 영어로 Hello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열심히 설명했다.
"나는 테니스 코트에 갇혔어요!"
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달랏을 찾았기에 비가 마냥 싫지는 않았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노을이 지기 전, 여섯 시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췄다.
그 뒤로는 선선하고 기분 좋은 저녁이 이어졌다.
늦은 밤에 비가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잠들고 난 뒤였다.
나는 며칠 머무르는 여행자였기에 비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현지인들은 다르다.
오후 세시 전에 오토바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도 안 오는데 비옷을 미리 걸친걸 보고서야
'아 곧 비가 오나 보다'하고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마지막 날인게 함정이었지만.
매일 오후 세 시에 비가 내리는 도시에서 산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다.
그 리듬에 맞춰 내 하루의 루틴도 자연스레 달라질 것 같다.
날씨가 루틴을 만들어 주는 일, 경험하고 싶다.
어쩌면 날씨는 하늘이 정해주는 시간표가 아닐까?
오늘의 시간표는? 뜨겁다.
한국은 여전히 덥다.
처서매직도 없다.
휴가가 끝나니 휴가가 그립다.
오후 3시가 되면 비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