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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Nov 01. 2024

#연작소설 만들기 (8)최애의 호구

<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맨발, 정상, 예약 

H는 2000년생으로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아이돌이다.

그러나 그는 1992년 출생자로 밝혀졌다.

이름도 낯선 외국에서의 학창 시절 덕분에 나이가 쉽게 밝혀지기 힘든 환경이었고

목격자도, 주워들은 제삼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이를 속이는 일은 연예계에선 흔한 일이었다.

다만 그는 한 두 살이 아닌 8살의 나이차이를 두었다. 


출생의 비밀은 그가 정상의 위치에 있을 때 불미스러운 일로 갑작스럽게 밝혀졌다.


마치 정상에서의 내리막길을 예약해 둔 것처럼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그의 명예와 인기가 단숨에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산의 길조차 맨발로 만들기 위해 각종 언론에서는 '나이뿐만 아니라'는 이야기로 

H의 티끌, 오점, 흠집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맨발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는데 아직도 소속사는 묵묵부답이었으며 H의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해체설, 탈퇴설, 잠적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팬들만은

여전히 중립기어를 둔 채,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곳곳에서는 여러 가지 의문으로 댓글, 대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8살??? 겁나 동안이네. 뭔 수술한 거 아니야?]

[뭐야, 멤버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뭐야? 모두를 속 이거야?]

[어린 멤버들 사이에서 동생 하니라 애썼다 애썼어~~]

[소속사는 알고 있었냐? 말았냐?]

[나이만 속인 게 아닌 거 아냐? 쟤 남자는 맞아?] 


찬찬히 스크롤을 내리던 불꽃소녀는 기분이 묘했다.

화가 나기보단, 어이없었고

어이없다기보단, 놀라웠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었고

설마 했다가, 정말인가라는 생각도 했다가


그게 과연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과연 H의 나이가 나에게 이렇게까지 중요한가라는 맥락까지 갔다.


난 그저, H의 나이를 좋아했던 게 아닌데 말이다. 


언론의 흐름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말했던 이모의 말이 떠올랐다.

이모는 몇 해 전, 좋아했던 연예인이 학력위조라는 소문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을 때

끝까지 그 연예인을 믿는다고 나에게 당차게 말했었다.

결국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게 밝혀진 뒤, 

그 연예인은 이제 학력위조가 아닌 연말 올해의 뉴스타상까지 노리고 있다. 


그래, 내가 바람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불꽃소녀는 언론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단언하고 

모든 기사 창을 닫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H폴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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