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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Nov 07. 2024

<나를 위한 돌봄> 때밀이, 세신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DAY10, 1인칭 마음챙김

온몸이 찌뿌둥하고 뇌에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머릿속이 아득한 날이다.

아는 단어도 입밖에서 어눌하게 발음이 나오면 때가 온 거다.


때를 밀 때가 왔다.


화장대 서랍에 모셔놨던 현금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슬리퍼를 신은 채 현관문을 열었다.

내가 향하는 곳은 동네 목욕탕이다.


옛날과 다르게 동네 목욕탕도 요즘 찾기 힘든데,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는 온천이라 이름 붙인

대중탕이 있다.


현관문을 열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활짝! 이 아니라

슬리퍼를 신고 세신 받아보자 팔짝!이다.


입술을 흥얼거리며 오랜만에, 나만의, 나만을 위한, 나의 시간인 세신으로 향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 누가 내 몸뚱이를 떼어가 정성껏 씻겨주기를 바라던 날.

마치 레고 사람이 되고 싶었다. 머리 부분, 팔부분, 다리 부분, 몸통 부분을 다 따로 떼서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었다. 깨끗이 정화한 후 다시 나를 조립시켜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렇게 나 대신 누가 나를 목욕시켜 주길 바랐다.


바디 리프레쉬를 받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날.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딱 그런 날이다.


어렸을 때, 피부가 빨개지도록 초록색 때밀이 타월로 나를 밀어주던 엄마가 생각난다.

보답으로, 엄마 등의 때를 밀어주겠다며 -  손끝에 힘을 줬던 그 아가는 이제

내 등을 밀어줄 사람을 찾아 목욕탕으로 향한다.


몸이 지치고, 무기력해서, 씻는 것조차 귀찮아 머리도 이틀에 한 번 감을까 말까 했던 나를

보고 엄마는 한 마디 했다. "목욕 가자, 내가 선물줄게"




씻으러 오는 목욕탕에 엉뚱하게 노란 현금을 들고 나타난 엄마는 급히 누군가를 찾았다.


그때 당시 나는 목욕탕에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본 광경은 이러하다.

목욕탕 입구 안쪽의 동쪽방향은 세신손님맞이를 하는 침대들이 여러 개 있었고

한쪽 벽타일에 붙어 있는 메뉴판에는 100포인트는 넘어 보이는 바를 정자 글씨체로  다양한 이름의 피부 정돈, 각질 케어, 스파 마사지 등의  세신 서비스가 적혀 있었다.


나는 머리카락도 누가 시원-하게 감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눈에 띈 다섯 글자가 있었으니..  

바로 샴. 푸. 서. 비. 스이다.

놀라웠다.


와- 정말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씻을 수 있구나-

그날 나는 따뜻한 물에 적셔진 스파 타월과 함께 여러 종류의 세신을 받았다.

서비스로 얼굴마사지도 받고, 오이 마스크팩도 했다.


엄마의 노란 현금이, 습기를 머금은 목욕탕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꼬깃꼬깃한 노란 현금이 나를 그날 살게 했고 곤히 잠들 수 있게 했다.


세신 후 노곤노곤해지면 덩달아 그날은 수면의 질도 한층 레벨 업 된다.

그래서 세신은 꼭 저녁시간에 간다.


세신도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

그전까지 나는 세신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때를 밀고 싶다는 감각도 없었으며

대중탕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즐겨 가시는 사우나의 개념으로만 생각했다.


근데 그 당시 나는 너무 힘들었다. 내 몸 하나 정돈하기 힘들었던 때라 세신은 나에게

민망함보다 구원과도 같았다고 할까. 너무 과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그날

나는 엄마에게 세신 선물을 받았다.




오늘, 나에게 말한다.

내 몸, 잘 듣고 있지? 오늘은 너희들 정기휴일이야.

내 몸들아 잘 들어, 오늘은 너희들이 스스로 몸을 씻을 필요가 없단다.

너희들에게 '목욕휴일'을 주겠어.


오늘은 내가 세신 받을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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