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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날다 Oct 24. 2022

엄마의 발바닥

 


 스물을 갓 넘긴 석구도 ‘복지상담창구’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그날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센터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물어볼 곳이 없었다.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몰랐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터져 나온 눈물은 멈추지 않는 듯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그의 울음소리에 센터 안 공기가 멈춘 듯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진정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울먹이는 그를 상담실로 데려가 한참을 다독였다. 

부유한 집의 외동아들인 석구는 초등학교 때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라 아빠를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부모님 또한 일찍 부모를 잃어 세상에 엄마와 단둘이 남겨졌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소위 ‘건물주’라 생계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십여 년을 함께하던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아빠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나는 것도 모르고….”

아빠의 죽음은 엄마의 마음을 병들게 한 듯했다. 엄마는 석구가 학교에 간 사이 목을 매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학교에 갔었다. 반찬 투정에 저녁엔 맛난 걸 해주겠다는 약속도 같았다. 평범한 하루였다. 

“누워 있는 엄마 발바닥이 자꾸 생각나요.”

아직도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아침에 반찬 없다고 밥도 안 먹고 학교에 갔는데, 엄마가 속상했을 텐데.”

밥투정이 엄마를 힘들게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된다고 했다. 

“나 때문인 거 같아요.”

그는 죄책감이 시달렸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친척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혹시나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서로 가족이 되어주겠다 했다. 갑자기 그에게 많은 보호자가 생겼다. 하지만 누구도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살유가족은 사회적 낙인에 더 고통받는다. 그로 인해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석구 또한 엄마의 죽음은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모두 죽음의 이유를 감추기 바빴고,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슬픔을 위로받지 못했다. 공허한 발걸음들이 늘어났다. 친척들은 석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먹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다들 그의 재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서로 후견인이 되어 재산을 관리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친척들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어요.”

석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삶이 멈춘 것 같아요.”

첫 만남 후에도 한동안 그는 시간을 잊은 채 살아가는 듯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무기력해 보였다. 불면의 밤이 계속됐고 혼자 있는 게 겁이 난다고 했다.     


 “살고 싶지 않아요.” 

유산상속과 엄마의 사망신고를 끝낸 후에 꺼낸 말이었다.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그의 눈동자는 그림자처럼 공허해 보였다. 자살위험도가 높았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자살로 가까운 이를 떠나보낸 사람은 그 일을 막지 못한 죄책감과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극단적 선택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가 고통을 치유하지 않고 살아가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故 최진실 배우 남매의 비극적 삶으로 우린 이미 그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에게 시간을 돌려줄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후로도 석구와의 만남은 계속됐다. 나는 그가 좀 더 심리적 안정을 찾길 바랐다. 몇 차례 상담 끝에 석구는 정신건강 상담을 받기로 했다. 자조 모임에도 참여했다.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들은 죄책감에 시달린 석구의 수많은 밤을 공감했다고 한다. 그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공감받는다는 것은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거 같았다. 그 어떤 의사나 명약보다 더 효과가 좋기도 하다. 석구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공감’을 받음으로 ‘오늘’이 생겼다고 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석구와의 첫 만남이 있고 일 년쯤 후에 온 연락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엄마가 보낸 힘든 시간을 알 것 같다고 했다. 엄마와 따뜻한 이별의 시간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만의 삶을 잘 살아내고 싶다고 했다. 느리지만 석구의 시간은 다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자살로 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살유가족 권리장전의 한 구절처럼 석구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본 여느 글귀처럼, 다가올 그의 시간은 ‘힘을 내는 하루가 아닌 힘이 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새로운 오늘’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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