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날다 Oct 24. 2022

어제도 봤는데


  해운대는 여름을 빨리 맞이한다. 많은 사람이 한여름 ‘피서철’을 떠올리면 해운대해수욕장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여름은 5월부터 시작한다. 5월의 햇볕은 화창하고 바람도 제법 시원하다. ‘여행’하기 딱 좋은 뽀송한 날씨가 이어지는 시기이다. 

 이곳의 5월은 ‘모래 축제’ 등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난다. 웅장한 모래 작품들과 밤에는 해상 불꽃 쇼도 볼 수 있다. 해수욕장과 이어진 ‘구남로’와 ‘해리단길’에는 버스킹과 예쁜 카페가 즐비하다. 그뿐만 아니다. 예쁜 풍경 가득한 산책로와 호텔도 많다. 쉼과 여가를 함께 누리기에 ‘매력적인’ 곳이기에 해운대는 늘 북적이는 사람들로 생기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사진과 추억을 남기기 바쁘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 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다.


 하지만 행복한 그곳에도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태양이 높이 뜰수록 그림자는 짧아지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다른 것 같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행복한 곳에서 마주친 외로움은 더욱 애잔하다. ‘알코올중독자 영수 씨’ 또한 화려한 풍경과 축제가 있지만, 함께 할 사람이 없어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하게 된 날도, 여름이 성큼 다가온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금요일 오후라 마음도 한껏 가벼웠다. 발걸음도 경쾌했다. 중독관리지원센터와 영수 씨를 방문하기로 했다. 좁다란 골목을 지나 익숙한 대문 앞에 도착했다. 어제는 술에 취한 그와 대화가 되지 않아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는 ’오늘은 꼭 그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자‘ 다짐하며 의기투합했다. 


 “영수 씨.” 

 문을 두드리며 불러도 인기척이 없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어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종종 듣지 못했다. 몇 차례 더 세게 문을 두드리고 큰 소리로 불렀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가 열어주지 않아도 문은 열려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열어주기 전까지 잠시 기다린다. 그와 만남에 예의를 다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와 달리 조용했다. 


 ‘어디 갔나.’ 

 잠시 생각 끝에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술을 마시고 잠이 든 걸까? 누워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를 깨우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가 불렀다. 

 “영수 씨.”

 소리를 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오늘따라 일어나질 못한다. 우리 소리를 못 듣는 거 같았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영수 씨, 영수 씨.”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더 다급해졌다. 하지만 이내 이름을 부르다 멈칫했다.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이제 떨림이 가득했다. 

 “아... 영수 씨.”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빠지고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영수 씨는 그렇게 심장마비로 혼자 먼 길을 떠났다. 


 오십 중반의 그는 늘 술에 찌들어 있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미혼이라 가족도 없었다. 젊을 땐 건설 현장에 일용직으로 나갔다. 처음엔 일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마시던 술이었다.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파도 그의 선택은 병원이 아닌 ‘술’이었다. 일도 나가지 못했다. 직장을, 친구를, 건강도 다 잃었지만, ‘술’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술과 함께한 시간만큼 그의 시간은 더 외로워져 갔다. 자신의 삶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 그 술이 그를 삼켜버렸다. 

 “어제도 봤는데.”

 아무리 사람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너무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을 맞이한 우리는 순간 얼어붙었다.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혹자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희 일이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일이라 해도, 우리도 ‘외로운 죽음’은 무섭다. 익숙해질 수 없다. 어제까지 반갑게 만나 얘기 나누던 사람이다. 늘 안부를 나누고 ‘그의 사정’을 다 알던 사이라 더 충격이 크다. 우리는 그의 ‘심리적 지인’이자 ‘사회복지사’이다. 그의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했다. 


 수소문해보아도 연락이 되는 친인척 한 명 없었다. 경찰에서도 연고자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다. 구청에서 장제비를 지원받아 장례를 치렀다. 유품 정리 지원으로 그의 삶의 마무리를 도왔다. 그는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5년 동안 안치된 후 찾는 이가 없으면 합동으로 안장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종종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만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다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술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왜 그렇게 살다 가는지 질책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그렇게라도 외로운 삶을 위로받으며 살아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례지도사로 수많은 죽음을 보아온 유품정리사 김새별 님의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의 사랑에 힘입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지막 순간을 평온하게 맞이하는 건, 천 명 중 한 명에게 주어질까 말까 한 특별한 행운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작은 먼저 가족, 친구, 이웃에 관한 관심이 먼저일 것이다. 우리의 작은 배려와 관심만으로도 외로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준비되지 않은 죽음과 이별하려 한다. 충분히 애도하고 잘 보내줌으로써 더 이상 외로운 죽음을 만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또 다른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을 준비해야 하는 ‘진행형’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