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씨의 집은 멋진 바다 풍경의 일부인 ‘핫’한 곳에 있다. 그녀는 매일 멋진 풍경을 마주하며 베란다에 앉아 있다. 하염없이 밖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나 맑다.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이라 더 슬픈 그녀다.
오늘도 영희 씨는 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앉았다. 긴 한숨이 담배 연기에 묻어 나온다. 남들은 멋진 바다 풍경과 함께 시작하는 그녀의 일상을 낭만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바다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가버린 남편과 큰딸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녀가 베란다에 앉아 시간을 보낸 지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들도 잘 안 나와요, 집에만 있어요.”
이웃은 그의 생사가 궁금했다.
“아들이 가끔 장 보러 가는 거 같은데, 한적한 시간에만 다니고.”
가끔 외출하는 아들은 볼 수 있었으나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다.
이웃의 궁금증은 불안으로 번졌다.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우리 동네에서 생길까 전전긍긍했다. 혹시 그녀가 죽은 채 집에 있는 건 아닌지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들이 뭔가 음침하니, 정상으로는 안 보여요.”
영희 씨의 생사를 확인하고, 가족이 이상한 거 같으니 정신병원에 보내달라는 민원이 접수되었다.
영희 씨 가족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몇 달을 집 앞을 서성였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집 앞을 서성이고 문을 두드린 어느 날, 드디어 마트에 가는 그녀의 아들을 만났다. 정수기가 고장 나 생수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의 아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렸다. 만나기 위해 방문 한 시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녀는 해운대에서 알아주는 부촌에 살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다. 복지담당자들의 방문을 의아해했다.
그녀는 딸이 고등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사망한 후 마음의 병을 얻었다. 그저 친구들과 사소한 다툼이라 생각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지만, 사춘기 반항이라 생각했었다. 딸은 혼자 두려움에 떨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딸이 죽은 날, 가족들의 마음 까지 함께 죽었다고 했다. 딸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남편은, 딸을 보낸 2년 뒤에 교통사고로 떠났다.
“엄마는 집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가족은 필요한 일 이외엔 외출을 자제했다고 했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건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집의 문도, 그의 마음도 닫혔다.
아들과 상담 끝에 영희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백발에 깡마른 체구였다. 마른 외모는 그녀의 마음 같았다.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하루에 두 끼는 꼭 챙겨 먹고 있어요, 식사량도 적지 않아요.”
나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아들이 대답했다.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하세요?”
나는 집에만 있다는 그들이 밥은 어떻게 챙겨 먹는지, 일상생활이 궁금했다.
“엄마가 장 볼 목록을 적어주면 내가 마트에 다녀와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도 하고요.”
기본적인 가사 활동은 영희 씨가 하고 장보기나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건 아들이 한다고 했다.
“건강은 괜찮으세요?
나의 끝없는 걱정과 의심 어린 말에 그녀는 다소 귀찮은 듯 대답했다.
“아프면 남편 친구가 하는 병원에 가면 돼요.”
“코로나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집에 오는 건 위험해요.”
아들은 그녀가 사람들과의 만남이 싫어 잘 안 나가기도 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19’ 상황이라 더 조심하며 다니다 보니 그런 소문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그제야 집 안 곳곳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은 깔끔했다. 베란다 한편엔 삶은 흰 빨래도 널려있고, 전기밥솥에서는 밥이 다 됐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공과금도 밀린 게 없었다. 생활은 월세가 나오는 건물이 하나 있다고 했다.
외출을 많이 하지 않을 뿐,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족은 선택적 칩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밖으로 나오라 강요하는 것이 맞는 건지 고민에 빠졌다.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틀린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나는 TV 프로그램 중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본다.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연의 삶을 선택했다.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에서의 칩거 생활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은 상처 입어 자연의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상처받고 참고 견디다, 그저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살고 싶지 않아 선택한 삶인 것이다. 어려울 때 반겨준 곳이 자연이라, 그곳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도 상처받고 위로받을 곳을 찾고 있는, 잠재적인 자연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희 씨 가족도 자연인들처럼, 그렇게라도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상처받고 위로가 되는 곳이 집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어쩌면 그녀의 가족도 도심 속에서 사는 ‘상처받은 자연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