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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날다 Oct 24. 2022

단골손님 미스터리



 “왔어요.”

 옆에 앉은 공익근무요원의 다소 긴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제히 출입문 쪽을 쳐다보았다. 최근 새로 생긴 센터의 단골손님을 보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기필코 오늘은 그의 미스터리를 풀고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며 그를 맞이했다.      


그의 방문은 나흘 전부터 시작됐다. 하루에 두세 차례 방문했으며 시간대는 들쑥날쑥하였다. 20대 초반 앳된 청년으로 보이는 그는 얼룩이 많이 묻은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며칠 감지 않은 듯 기름져 있었다. 

처음엔 에어컨 밑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 가곤 했다.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잠시 더위를 식히러 온 민원일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의 방문은 다음 날도 이어졌다.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와 에어컨 밑에 잠시 앉아 직원들을 주시하거나 혼잣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가 싶어 말이라도 걸면 소리를 지르고 나가버렸다.

     

“ 아악~ 아악~ 으악~.”

알 수 없는 의미의 소리와 말들이었다. 그의 행동과 모습은 평범하지 않음을 짐작게 했다. 혼자만의 세계가 있어 보였다.

그날 오후에도 역시 방문은 이어졌다. 센터가 다소 익숙해졌는지 여기저기를 탐색했다. 휴지통을 뒤지기도 하고 민원 신청서류를 뒤적이기도 했다. 가끔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벽을 한참 두드리기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은 계속됐다.      


우린 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웬만한 주민들은 몇 단계만 거쳐 물어보면 파악이 되는데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주민도 직원도 없었다. 그는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우리는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그의 안전이 걱정됐다. 어떻게든 다가가서 이름이라도 알아보려 했다. 그가 관심 있어 하는 휴지통 앞에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마실 것을 주며 자연스럽게 다가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가까이 가면 소리를 지르고 나가버리기를 반복했다. 혹시나 인근에 동행이 있나 싶어 뒤쫓아 나가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몇 번 그런 일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를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의 방문이 시작된 지 나흘째 되던 날, 어쩐 일인지 그날은 오후 2시가 훌쩍 지난 시간인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름 해운대 바다는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뜨내기가 많다. 우리는 그도 물거품처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목이 빠지라 그를 기다릴 즘 지구대에서 우릴 찾아왔다. 인근 식당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휴지통을 뒤지고 소리를 지르며 음식을 집어 먹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인상착의가 그였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니 혹시 나타나면 보호자를 찾아 인계할 수 있도록 지구대로 바로 연락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방문을 대비해 작전을 짰다. 그가 센터로 들어서는 순간 지구대에 전화하고, 어떻게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그를 붙들어놓기로 했다. 안되면 문 앞을 지키고 서서 그의 퇴로를 막아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우린 그렇게 나름의 업무분장을 마치고 긴장감 속에 그를 기다렸다.     


3시가 훌쩍 지나 다시는 그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포기하고 있을 즘,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더 해맑은 모습이었다. 

“까르~ 깔.”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로 웃으며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우린 그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지구대에 연락했다. 다가가면 나가버릴 수 있으니 최대한 다들 주시만 하고 경찰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그가 나갈까 싶어서 문을 살짝 닫아놓았다. 문을 열고 나가는 찰나의 시간도 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심상찮았다. 양손이 붉은 게 피를 흘리는 거 같았다. 센터 여기저기에 웃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찍어대고 있었고 순식간에 모든 벽이 빨갛게 물들었다. 다친 것으로 보여 더 걱정되었다.      


다들 한마음이 되어 그를 붙잡았다. 응급처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나가려는 그와 퇴로를 막은 직원들 사이에 팽팽한 기 싸움이 시작될 즘, 다행히 지구대가 도착했다. 지구대는 능숙하게 그를 제압했고 그사이 우리는 그의 손 상태를 살폈다. 손바닥이 너무 빨게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아.”

한참을 그의 손바닥을 살피던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처인 줄 알았던 그의 손은 다행히 인주로 물들어있었다. 민원대에 있던 인주를 손에 묻혀 여기저기 찍고 다닌 것이었다. 그날의 해프닝은 그렇게 끝났고, 그와 우리의 짧은 만남은 이별을 맞이했다.     


얼마 후 그의 부모님이 감사 전화를 했다. 스물여덟인 그는 스물에 입대 후 조현병이 발병하여 오랜 입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병원 생활을 힘들어해 며칠 외박을 허락받아 집에 왔는데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다. 그의 집에서 해운대까지는 2시간이 넘고 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약도 먹고 진정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도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는 또 다른 그와 마주해야만 했다. 센터 곳곳에 붉고 곱게 물든 그의 손바닥과는 쉽게 이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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