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이제 네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할 일없이 그곳을 바라봤지.
네가 없다는 걸 "아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야.
마치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차는 오른쪽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에 차이만큼이나.
너의 부재와 그로 인해 남겨진 빈 공간을 납득하지 못 한 나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어.
언제나처럼 당연하게만 생각 되었던 네가 있던 그곳은, 존재로서는 변한 것이 없지만 네가 함께했던 그곳과 너가 없는 그곳은, 마치 다른 장소의 다른 시간대에 속한 것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장소가 되고 말았어.
그곳을 더는 "장소"라고 하는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어.
네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왔어. 마음이 아프다고? 스스로에게 놀라, 그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너의 상실로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아파온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는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았다는 것일 텐데.
너를 잃고도 마음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는 나의 전부이고 네가 없다는 것은 껍데기로 남은 내가, 이 부적절한 시간과 장소 속에서 단지 형태로서 그림자에 불과 할 뿐일텐데, 그림자라는 것도 빛이 사라지고 나면 무의미한 껍데기로도 남지 못 해 영원히 사라지고 말 뿐인 순간에 지나지 않는데.
아프다는 감각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마음은 어디에 고여 있는 것인지, 마음에 깃들어 있을 너의 존재의 흔적이 궁금했어.
온전히 사라진 너의 존재가 어쩌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그마한 흔적을 남겨 두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온전히 사라지기 전에 너는, 너의 모든 걸 걸고 그렇게라도 작은 흔적을 남겨 놓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를 생각하니 다시금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려 했어.
적당하지 못한 장소와 부적절한 시간 속에서 필연적으로 사라져야만 했을 너는 여기, 이곳, 그러니까 그곳에 홀로 남겨질 나를 위해 너의 존재의 흔적을 희미하게라도 남기려 부재의 문턱에서 마지막 숨까지 내어 주었을 너를,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데.
그러나, 나의 마음이 희미하게 멀어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어.
할 일없이 바라보는 텅 빈 그곳이 ,
언제나 네가 있었던 그곳이,
당연했던 그 존재의 시간들이,
희미하게 멀어지다 잊혀져
왜 , 나는 할 일 없이 그곳을,
아무것도 없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 한 체로,
바라본다는 사실마저 잊고 말 것이라는 거을 직감하고 있어.
희미하게 남은 흔적조차, 이제는 잊혀진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 한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것도 직감하고 있어.
이제 이해해야 할 것은,
적당하지 못 한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 것 일 테지만
네가 없음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무엇으로 남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 볼 시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네가 없는 그곳
네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잊혀진 그날에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날이 올 것인가
희미하게 남은 마음 한 조각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두둥실 떠올라 날아가는 것을 할 일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