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일요일의 해저(海底)

by 봄날의 북극

중학교시절 이야기다.

학교에 다니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 그런 것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지만 시험기간 만큼은 일요일에 학교에 가서 빈 교실에 들어가 공부를 하곤 했다.

꼭 공부를 해야겠다, 혹은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4인 가족이 일요일 좁은 집에 부대끼는 것보다는 공부 핑계로 학교에 간다고 하면 간식거리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군것질하는 재미가 좋았다.


일요일이라 학교가 개방되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문단속이 철저하던 때가 아니라서 교실 문이 잠겨져 있지 않은 곳이 제법 있었다.


한 학급에 60명 가까운 학생들로 복작되던 평일과 달리 텅 빈 교실의 적막감은 마침 깊은 심해의 바닷속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5월 한낮의 따뜻한 햇살도 일요일의 깊은 해저 같은 교실까지는 닿지 않는지 서늘한 냉기가 돌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두껍지 않은 커튼을 뚫고 들어온 은은한 5월의 빛으로도 충분했다. 커튼을 활짝 열지 못 하는 것은 누군가 외부에 보게 될까 걱정 되었기 때문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주 조금 커튼을 밀치고 운동장을 바라본다. 아이들의 소란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은, 긴 하루를 끝낸 생명이 햇빛 아래 고요히 잠든 듯 보였다.


"드르륵" 거칠게 교실 앞문이 열렸다.

당직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던 건 우리 반 악동이었다.


일요일에 학교에 그가 나타난 것은 의외였다. 가끔 학교도 맘대로 나오지 않는 녀석인데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나오다니 뭔가 잘못된 장소, 잘못 찾아온 손님처럼 느껴졌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교실을 빙 둘러보던 그는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교실에는 나 말고 2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는데 다들 그날 처음 보는 녀석들이었고 그 두 명이 우리 반 악동을 알리 없었다.

그가 풍기는 장난스러움과 불량한 느낌만은 그들도 눈치챘는지 슬금슬금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늘 나와 함께 공부하러 학교에 가자고 했던 친구 녀석은 아직이라, 이제 교실에는 그와 나 둘이다.


그는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야 공부하러 왔어?"

딱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 했다.

"담배 하나만 사다 줘라" 싱긋 웃는 그의 미소에는 비열하면서도 묘하게 차가운 냉기가 돌았다.

"아, 돈은 줄게. 세 개피만 사다 줘."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낱개 담배를 팔던 시절이었다.

"너라면 어른들 심부름이라고 핑계를 대면 아무 의심 없이 줄 거야"


그래서 내가 정말로 담배를 사다주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동안 그 문제로 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폭력이 사용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도 사실 정말 담배가 피고 싶었던 건지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그날의 서늘한 교실은 그가 나타난 이후로 냉기보다는 불안하고 무언가 파괴적인 기운으로 기억된다.


그가 담배를 피우며 말을 했던 건지 아님 담배는 진작에 포기 한채 말을 이어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의 장난스럽고 불량했던 그의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 들이다.

"그날도 아삐의 불안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

"심장이 오그라 들 것 만 같았어. 아빠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언제나처럼 술 냄새가 먼저 확 밀려들어왔어"

"늘 똑같은 말, 너 때문에 엄마가 도망간 거야로 시작되는 그의 저주 섞인 말들과 그것보다 더 지독한 손찌검이 시작돼. 이제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언제쯤 끝이 날까 그것만 생각하고 있지. 그는 욕설과 폭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분노에 휩싸이는 가봐. 어느 날은 물건을 잡히는 대로 던지기도 하고, 어제는 부엌에 가서는 칼을 들고 왔었어. "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절망적이고 깊은 두려움이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는 듯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었었다.


잠심 말을 멈춘 그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집을 나왔지. 아마 10시도 넘었을 거야. 갈 곳이 없어서 그냥 동네를 돌아다녔어. "

"아, 너도 알지? 1층에 **구멍가게가 있는 2층집."

"술 심부름으로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나 봐."

"그런데 거기 2층에 어떤 누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나도 가만히 마주 봤어, 그때 누나가 웃었어.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자신에게 오라고 하는 듯했어. 딱히 갈 곳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서는 누나를 바라보고 만 있었지. 근데 그 누나를 바라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 2층에서 바라보는 누나의 위치가 기묘했던 거지. 자세히 봤더니 그 누나 허리 아래로 당연히 있었야 할 것 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담장에 걸터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허리 아래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어."


그 말을 듣던 순간에 나의 머리카락도 쭈뼛거렸던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나 이제 술 심부름을 못 할 것 같아"

"다시는 그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은 절규처럼 들렸지만, 그 이후로 그가 그토록 원치 않던 술 심부름을 가지 않았을까?

그날 우리 반의 악동이자 늘 남을 괴롭히기만 했던 그 아이가 가엾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담배 따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나에게 고맙다고 했고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비밀이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학교에 등교했을 때 그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어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봤지만 설마 중학생이었던 그 어린 나이에 그랬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그 이후로 딱히 누구와도 시비를 붙지 않고 늘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잤다.

그날도 수업 중에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지 꿈을 꾸는지 그러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와 선생님에게 귀속말로 무언가를 전달하자 선생님은 자고 있는 그를 깨워 교무실로 가보라고 일렀다.

교무실로 간 그는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운동장을 바라봤을 때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젊은 여자와 그 아이였다.

깊은 해저에서 헤엄치듯 그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5월의 햇살이 전혀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두꺼운 거튼이 쳐진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는 그 빛이 닿지 않는 듯 했다. 그때 무언가 생각난 듯 그 아이는 젊은 여자의 손을 놓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물론 나를 돌아봤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본 건 그가 조금 전까지 속했던 이곳 교실을 살펴본 것이겠지.

그는 잠시 그렇게 교실을 올려다본 후 똑같은 모습으로 젊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며 웃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음날 들린 소문으로는 그의 이모가 와서 미국으로 이민 간 엄마를 대신해서 그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도 곧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 아이가 다시는 술심부름으로 가게가 있는 2층집을 가지 않았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되었다.

그 먼 미국에서 그가 행복했을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딱 한번 나도 그가 말한 2층집을 지나간 적 있다.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는 가게가 딸린 집이었다. 그곳에서 손짓하던 그 누나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부디 길을 잃지 않고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나도 그러기를 바라며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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