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잠이 깨버려서 다른 날 보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햇살이 창으로 밀려 들어오기 전이라 방구석에는 여전히 어둠이 남아 있다. 열어둔 창으로 아침 공기가 상쾌하게 밀려들어 온다. 이른 아침이라 분준한 아침의 소란은 들려오지 않는다. 바로 앞이 초등학교라 곧있으면 학생들의 등교로 분주한 소란이 들려오겠지만 지금은, 고요한 아침의 지금일 뿐이다
돌체구스토에 물을 채우고 트레베네치아 산마르코 캡슐을 밀어 넣는다, 산미가 강하지만 아침에 먹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은은하고 깊은 향이 곧, 작은 내 방을 가득 매운다. 커피를 마시기 전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물을 벌컥 들이켠다. 밤새 메말라 있던 목안이 젖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메말랐던 입천장과 목안이 젖어들자 꿈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몽롱한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이끌듯 듯 명료함이 느껴지는 시원한 물 맛이다.
두 발은 현실을 딛고 손안에 잡힌 물 컵과 방안에 가득한 커피 향은 아득한 그곳 어느 지점의 불확실성과는 달리 명확하고 명료하게 이곳에 있다,
알맞게 추출된 커피는 엷은 크레마를 쌓아 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맛이 느껴질 정도다. 특유의 산미가 혀끝을 적시자 물 한잔으로 적셔진 입안에 침이 돈다. 목안으로 밀고 들어온 카페인이 몸 안의 세포를 일깨우듯 어루만진다. 이곳에는 더 이상 어느 지점 어느 장소의 불확실성은 남아있지 않다. 이른 아침이지만 햇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 안으로 스며들고, 조금 있으면 등교하는 아이들의 소리도 분명하게 들려 올 이곳은 불확실성이 사라진 현실의 공간이다.
물론 현실의 공간이라는 것이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는 직설적인 곳만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의 카페인이 몸 안의 세포를 일깨우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세포로서 직접적으로 외부의 것들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어느 지점의 어느 시간과는 다른 차이일 것이다.
산미 강한 커피 때문이지 식욕이 살아나서 허기가 느껴졌다. 배고픔 역시 그러한 현실적 감각이라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냉장고에는 배고픔을 달랠만 한 것이 없음을 안다. 장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 까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은 잘 먹지 않는 탓에 아침을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한 아침 때문일것이다. 커피를 마실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커피를 마신 탓에 위장도 깨어나고 충분한 여유가 가져온 허기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 아침이다.
오전에 카페에서의 인터뷰만 예정되어 있지 않다면 침대에서 조금 더 뒹굴 거리거나 지금처럼 일찍 잠이 깼다고 해도 소파에 늘어져 게으른 아침을 시작해도 되었을 것이다.
굳이 커피 한잔으로 내 몸의 세포를 일깨우지 않고 모호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꿈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아침을 보낸다고 해서 해가 될 것도 없는 그런 주말의 아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주말은 평상시 주말과는 다른 것이다. 정해진 약속이 있고, 평상시의 주말과는 다른 아침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현실적 배고픔이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지난밤에 저녁을 먹지 않았던가?로 시작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순간 인터뷰가 잡혀있다는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기억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눈을 뜬 오늘 아침에 카페에서의 인터뷰를 인지하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어서 왜 그러한 약속이 잡혔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에 관한 인터뷰인 것인지, 혹은 내가 누군가와 인터뷰를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인 것인지, 모호할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사실로서, 현실의 지금으로서, 그 약속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진 약속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연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까?
침대 옆 협탁 위에 인터뷰어의 명함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네모 반듯한 전형적인 명함 사이즈였지만 명함의 내용은 전형적이지 않다. 하얀 바탕 화면에는 이름 말고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흔한 전화번호도, 이메일 한 줄 도 없는 이름만이 각인되어 있다.
명함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작은 종이에 쓰인 메모장이라고, 메모장이라고 하기에는 종이의 품질이 상당히 고급지기는 하지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 적혀 있는 것이 이름인지도 확신 할 수 없다.
"아네스"
고딕체의 글씨. 폰트 12 정도의 크기로 쓰인 세 글자가 이름일 거라 짐작했을 뿐, 사람의 이름인 것인지, 어떤 기관의 이름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의 이름이라고 하기에는 한국적 이름은 아니고, 닉네임으로 사용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명함에 자신의 닉네임 만을 사용하는 명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얀 명함의 재질도 그저 평범한 명함의 일반적 소재, 비록 고급지긴 하지만, 일 뿐이지만 거기 담겨 있는 것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이 않은 것은 그 명함을 건네받았을 상황의 기억은 없으면서 오늘, 카페에서의 약속만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명함을 직접 보고 있지 않았다면 카페에서의 인터뷰를 생생한 꿈탓에 일어난 착각이라고 생각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급진 메모장 같은 명함이 가져온 확실함이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어쩐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내 마음 상태가 더욱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 카페에서의 인터뷰 내용도 알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괭이부리 갈매기에 대한 인터뷰겠지.'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그가 원하는 것은 괭이 부리 갈매기에 대한 어떤 것. 그 점을 나라는 인간과 인터뷰를 통해 알아내려고 생각한 '아레스'는 어떤 인물일까?
그가 혹은 그녀? 가 '괭이부리갈매기'를 어째서 나에게 물어보려 하는 것인지, 나의 꿈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인지. 나라는 인간은 누구라도 조금의 관심을 가지고 관심 있게 들여다보다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들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던 나의 것들을 아레스는 알고 있을까?
괭이부리갈매기를 알고 있다면 그들의 존재도 알고 있는 걸까?
이미 허기짐은 잊어버렸다. 방안 가득 채웠던 커피 향도 엷게 흐려졌다. 시간은 여전히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분주한 소란함이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명료해지는 아침의 풍경이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의 소리, 조심조심 달려가는 자동차소리, 무언가를 일깨우듯 경고하는 호루라기 소리.
주말인데도 아이들의 등교 소리... 주말인데? 문득 그 지점에서 나는 더욱 혼란 스러졌다.
주말의 아침이라고 생각한 지금이 현실적 지금인지 아님 그 어느 지점 어느 시간 속에서 잘 못 깨어난 그곳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물이 명확해지는 만큼 나의 지각과 인식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손안에 맨질맨질 만져지는 고급진 명함의 느낌이 사실적이라고 느끼고 있는 나의 지각이 현실적인 것인지 커피 향이 이미 사라져 버린 이 작은 공간에서 카페인 때문에 각성되었던 명료한 그 느낌과 허기짐이 사실인지, 아님 꿈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나는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지만 모든 것은 부질 없는 의심일 뿐이었다.
아침이 오기 전, 잠에서 깨기 전 나의 손을 애타게 바라던 어둠 속의 누군가가 서성이듯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나의 기억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주말 아침, 나는 몹시 허기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