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새벽 2시 그쯤이겠지.
어쩌면 새벽 2시가 되기 바로 직전이거나 아님 막 2시를 지나고 있는 시간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사실을 나는 받아들인다. 익숙한 듯 한 기시감이 드는 지금의 시간.
마침 비도 오고, 3월의 날씨는 춥다.
거리에는 사람의 흔적은 없다. 새벽의 비 오는 이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닐 사람은 없겠지.
버스도 끊겨버린 도로에는 손님을 태우거나 손님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택시들의 불빛 그리고 이 시각에 잠들지 못하는 화물차들 만이 비를 가르며 달리고 있다.
노면에 스며든 빗물이 타이어에 거친 마찰음을 내며 파르르 아스팔트 너머로 흩어진다.
어디에나 어느 곳에 나 있는 전화부스가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이곳은 전화부스가 스마트폰보다 더 흔한 지금이니까. 전화부스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거나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인다.
지금이 새벽 2시 그쯤인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비가 언제부터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곳에서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거리를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지금 이곳, 지금의 시각이 나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
그런 한 것이 왜 인지 알 수 없는 것도 당연하게, 혹은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차가운 비가 머리 위를 적시고 얇은 옷 위로 점점이 적셔진다.
3월의 새벽은 말했듯이 춥다.
차가운 비가 옷 위로 떨어져 적셔지지 않아도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서늘하다.
서늘한 한기가, 사실적으로 느껴져서 이곳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물먹은 옷은 점점 무거워지고 신발에도 물이 조금씩 스미는지 걸을 때마다 아스팔트를 달리는 타이어의 마찰음만큼은 아니지만 파르르 파르르 이상한 소리를 낸다
거리의 상점들은 불이 꺼졌고, 파르르 파르르 달려가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만 아니라면 비 현실적으로 조용한 거리였겠지.
물론 물 살은 가르는 자동차의 소리가 없어더라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적만 한 이 밤을 일깨웠지도 모를 일이다.
거리의 가로등도 추위에 하얗게 질렸는지 창백한 빛을 발한다.
하나의 가로등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동안 하나의 가로등이 밝히던 나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다 사라질 즈음 또 하나의 가로등이 나의 그림자를 키운다.
문득, 가로등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고요한 가로등의 하얀 품 안으로, 수천 개의 은색 화살이 궤적을 그리며 쏟아진다. 빛줄기는 빛의 인력에 이끌려 속도를 이기지 못 한 별무리처럼 길게 늘어진다. 투명한 빛의 파편들이 시야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비산 한다. 마치 SF의 영화 속 CG처럼 주변의 별빛들이 길게 선으로 늘어나는 듯한 모양이 '하이퍼스페이스 점프(Hyperspace Jump)' 같다.
이 터널을 빠져나간 우주선은 우주의 끝을 향해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가로등을 올려다보는 동안 나도 어딘 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지점, 어느 시간 속으로 하이퍼스페이스 점프(Hyperspace Jump) 할 수 있다면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우리 중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나 차갑게 얼굴을 때리는 3월의 비는 나의 환상을 일깨운다.
현실의 지금을 생각하라는 듯 또르르 이마를 타고 내리는 빗줄기는 턱선을 따라 가슴으로 스르륵 사라지고 있다.
때마침 깜박이는 전화 부스의 불빛이 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비상 불빛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전화 부스 안에 수화기는 반환 레버 대신 전화통 위에 차갑게 올려져 있다.
한 통의 전화가 가능할 정도의 금액이 남아있는 전화기를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고 여기 아직 너를 기다리는 내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은 아니겠지.
3월의 비는 끈질게 내리고 목적 없는 나의 걸음은 다음 가로등을 향해 짧아진 그림자를 따라 언제까지나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