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난 같은 아름다운 미소에 다소곳이 두 손 모아 인사하는 태국 여성들의 웃음 띈 맑은 눈망울을 보면 늘 마음부터 편안해진다. 해 질 무렵 이면 길가 포장마차의 조그만 전구들에 하나둘 불이 켜지고 인근 골프장에서 퇴근하는 캐디들의 스쿠터 행렬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 돌아온 적막한 방에 아직까지 머물러 있는 더위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벗 삼아 또 하루를 보냈다. 내가 캄보디아 내전 직후 킬링필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놈펜을 떠나 캄보디아 사업 정리 문제로 태국 파타야 콘도에서 생활할 때 얘기다. 내가 도시에서 탱크를 본건 국군의 날 행사 말고는 5.16 때 그리고 공비 김신조 사건 때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서거한 12.12 사태 정도로 기억되는데 밤새 총소리가 들리더니 다음날 아침 프놈펜 시내로 탱크가 진입 하기 시작했다. 내전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 당분간은 내가 하던 일의 진행이 어렵다는 판단에 대충 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갔으나 방콕 가는 비행기 편은 이미 모두 만석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그런 일들은 늘 겪어본 터라 자연스레 데스크 여직원에게 다가가 여권 사이에 돈을 넣어 건네주었더니 얼마 후 자리가 나왔다고 손 흔드는 항공사 여직원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었다. 그렇게 프놈펜을 떠나 캄보디아 소식을 기다리며 태국 파타야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나의 일상은 오래전부터 현지에 사는 후배와 그리고 지인들과 어울리며 매일 골프로 시간을 보낼 적이 많았는데 어느 날은 혼자 피닉스란 골프장에서 캐디 둘을 데리고 100홀에 도전해본 적도 있다. 어슴프레 동이틀 무렵부터 시작하여 달리듯이 홀들을 지나갔으나 36홀을 돌고 나니 그때부터 중간중간 앞팀들이 밀리는 바람에 패스까지 받아가며 도전해봤지만 결국 90홀 정도에서 멈추게 되어 늘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그때가 우리보다 먼저 IMF를 맞은 태국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관광대국 타일랜드는 6.25 당시 UN 참전국으로 우리를 도왔던 나라다. 정부가 혼란스럽고 부패하여 쿠데타가 끊이질 않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타이 왕국이었다. 연금 받는 유럽의 노인네들이 젊은 여자들을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우고 돌아다녀도 남들을 의식 안 하는 곳이며 왕은 수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하루 몇천 원으로 생활하는 서민들의 표정은 아무 불만도 없는듯 늘 평온해 보여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같은 그들을 보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보며 무소유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최고급 호텔들이 즐비하고 세계 3대 요리에 들어가는 태국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다. 누굴 탓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드러움 속에서 그들의 강인함을 느꼈다. 영화에서 보았던 콰이강의 다리는 방콕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칸차나부리에 있다. 그곳 골프장을 간 김에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 갔는데 막상 보니 영화 같은 감동은 없었지만 스토리가 많아선지 특히 영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했다.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았는데 우리는 저녁에 배 위에서 빨갛게 잘 구어지 애저를 먹으며 즐겁게 강을 오르내렸다. 일본군이 이곳을 지나 지금 미얀마로 가는 방향에 나무로 만든 죽음의 철도가 있던 그런 장소에서 뱃놀이를 하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곳을 지나갔으리라 생각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여옥과 대치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스토리를 생각하니 그 감동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우리보다 먼저 지나간 일본인들의 자리에 까올리라 불리는 많은 한국인들이 태국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들을 업신여기는듯한 태도로 대하는 일부 관광객들의 추태가 가끔 신문에 보도되는데 촌놈 꼴값 떠는 것 같은 그런 행태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눈으로 보이는 챠오프라야 강이 우리에게는 더러워 보일지 몰라도 태국인들에겐 많은 것을 주는 맑고 아름다운 강이다. 우리보다 넓고 자원이 많은 태국에서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