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도중 축 처진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없이 걸어가는 아들을 보고 그날 많은 생각을 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 녀석이 공부에는 별 생각도 없는데 아이를 저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집사람과 의논 끝에 동생들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보내기로 했다. 그곳에 어머니도 계셨고 해서 거기서나마 공부에서 벗어나 마음껒 놀며 건강하게 지내라는 마음에서였다. 방과 후에도 학원에 또 과외공부, 그런 것에 지쳤었는지 아이도 주저 없이 가겠다고 해서 그렇게 갔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닌 경험이 있어선지 잘 적응하는 것 같았고 거기다 할머니의 뒷바라지 덕분에 아무 탈 없이 그곳에서 외국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방학 때마다 떠나는 학교 단체 해외여행 등 학비 외에도 들어가는 비용들이 많아질 때마다 우린 긴축 또 긴축하며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가 같다. 학교 졸업 즈음 그곳 학교 선생님들과의 미팅에서 미국 대학 몇 군데를 추천받고 귀국하였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부모와 함께 해외 동반 거주자가 아닌 경우 병역을 필해야만 출국할 수 있다는 관계부처의 통보에 집사람과 아이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결국 안되면 되게 하라는 나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미국 대학으로 가게 되었고 그렇게 아이가 간지 얼마 만에 말 만들어도 징그러운 IMF가 터지고 말았다. 갑자기 튀어 오른 두배 가까운 환율에 저절로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난 장고 끝에 미국으로 떠나 생전 처음 겪는 일들을 하며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학교 교사인 집사람과 나는 결국 힘에 부쳐 방학중 귀국한 아들을 반강제로 군입대를 시켰다. 최전방 철책선 근처로 가게 되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강원도 고성에서 군생활을 하다 무사히 제대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졸업했다. 아이가 미국 생활하는 동안 가디언을 맡아준 친구를 통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걸 알아봤는데 착실하게 지내고 있으며 학교 성적 같은 건 너무 알려고 하지 말라고 그랬다. 졸업 직후 귀국한 아이는 잠시 회사 인턴 생활을 하며 지냈는데 우린 그저 빨리 직장이나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던 중 어느 날 아들이 리먼 브라더스라는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는 나도 처음 들어본 회사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회사가 세계경제를 휘청 거리게 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대단한 회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그 회사는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안긴 후 파산하였고 회사가 그렇게 되자 헤드헌터라는 사람들에 의해 아들은 곧바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몸값을 불린다는 둥 어쩌고 하면서 굴지의 여러 회사 들을 거친 후 지금 일하고 있는 홍콩에 살고 있다. 한참이 지난 지금 도아들의 지나온 과정이 참 신기했다. 제대로 운이 닿았다고나 할까. 하여간 서울에서 같은 회사에 다니던 며느리와는 일본 근무 때 만나 결혼한 후 홍콩에서도 같이 일을 하였지만 아이들을 보모에게만 맡긴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며느리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 사돈댁에서는 무척 아쉬워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한 일이니 어쩌겠는가. 손주 둘 다 made in Hong Kong. 홍콩서 태어났는데 어느새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르다라는 걸 느끼게 된다. 국내에서 말하는 소위 SKY 출신들이나 미국 IVY 나왔다고 다 잘 풀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 자기의 타고난 運이 7이고 나머지 3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가끔 국내에 들어오면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신 대전 현충원부터 찾는다. 운도 운이지만 하늘에 계신 할머니가 자기를 지켜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남해 금산 보리암부터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 그리고 여수 향일암까지 관음보살 4대 관음성지를 찾아가 보았지만 나의 운은 오는 도중 파도를 만난 듯 아직까지 내게 찾아오질 않았다. 꿈이길 바랬던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이풍진 세상이 버겁거나 내 살아온 흔적이 덧없을 때 훌쩍 찾아간 빛바랜 불상과 이 나간 주춧돌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되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