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나는 늘 외갓집이 있는 춘천 서면 이란 곳에서 지냈는데 언제부터인지 소위 박사마을이라 불리는 그곳이었다. 특히 겨울에 춘천 가는 열차 안은 톱밥이나 조개탄을 때는 난로가 있어 실내가 훈훈했고 오징어를 구워 먹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짓궂은 장난이 심해 요주의 인물로 찍힌 나와 동생이 방학 때마다 가니 할머니는 피곤하셨을 법 하신데도 늘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셨다. 춘천 시내에서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 갈 수 있는 외진 곳이라 먹고 즐길 거라고는 별로 없는 조용한 시골이 었지만 그곳은 나의 낙원 이었고 학교 교장 선생님 이셨던 외할아버지는 가끔 춘천 시내 다녀 오실 때마다 내주전부리 과자들을 한 보따리 사들고 오셔서 딱히 필요한 건 없이 지냈다. 할머니는 늘 맛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만들어 주셨는데 그중 최고는 추운 겨울날 밤에 말아주시던 동치미 국수였다. 이불속에 발을 넣고 덜덜 떨며 먹던 그 맛은 평생 잊을 수가 없으며 거기다 디저트로 구운 가래떡에 꿀을 발라 먹으면 금상첨화 , 행복한 겨울밤이었다. 그때 먹던 닭 표국 수가 잘보이질 않아 없어진줄 알았는데 지금 까지 남아 있다는걸 얼마전에야 알게되 무척 반가운 옛친구를 만난것 같았다. 지금은 집에서 동치미나 나박김치 같은걸 담가 먹질 않기에 마트에서 동치미나 냉면 육수를 사다 먹어 보지만 달기만 하고 옛날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어 그때 할머니가 담그신 쌉싸름하고 탄산수 같은 동치미 국물의 그 맛이 그립고 아쉽다. 우리는 집안이 이북 사람들이라선지 난 평양냉면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특히 겨울철에는 집사람과 자주 여러 냉면집을 찾아다니며 냉면 맛을 즐기고 또 다른 곳과 비교해 보기도 하는데 딱 어디가 최고다 라고 단정 하기에는 집집마다 다 특색이 있어 평가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원조 평양냉면 맛이 어떤 건지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집을 자주 다니게 된다. 근간에 평양에 살다 남한에 정착한 이북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곳 냉면과 남한의 냉면 맛은 전혀 다르다고 하니 과연 평양 옥류관 냉면 맛은 어떤지 늘 궁금하다. 동남아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맛본 그 맛도 아닌 거 같고 백두산 갔을 때 동북삼성에서 혹시 그 맛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맛도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콩나물이나 감자 삶을 때 그 풋풋하고 구수한 냄새도 지금은 느낄 수 없으니 많은 세월이 지나며 옛것은 사라져 가고 그리움만 남는다. 국내의 수많은 냉면집들 중 아직 못 가본 곳도 많고 새로 생겨난 곳도 많은데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다녀볼 욕심에 마음만 앞선다. 다녀본 냉면 집중 우래옥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와 다니던 곳이며 지금도 자주 찾는 냉면 집중 하나인데 그래도 이북에서 먹던 냉면 맛이 남아선지 이북 사투리를 쓰는 영감님들이 늘 북적이는 곳이다. 그리고는 내가 오래전부터 다녀본 냉면집들인데 평양면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강서면옥. 강계 면옥. 원산면옥. 능라도. 을밀대. 아소정. 평가옥. 남포 냉면. 서북 냉면. 고박사 등 대충 이런 곳들인데 이중 어떤 집이 원조 평양냉면의 맛을 내는지는 알 수 없으니 어딘가에 은둔하고 있는 진짜 평양냉면 집을 찾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구경을 하는데 맛 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맛있는 냉면 이요 냉면 국물 더주시요 아이구나 맛 좋다' 박태준 선생의 가곡 냉면의 가사다. 그런데 값싸다는 냉면 값이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고 거기다 막국수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으니 이젠 냉면이 서민 음식도 아니고 냉면 맛을 느끼고 그리워하는 세대들을 마지막까지 우려먹는 중인데 그들이 다 떠나야 냉면 값을 내릴는지 알 수가 없다. 냉면 먹기 전 소주 한잔 그리고 마지막에 메밀 삶은 따듯한 물로 입가심하고 나면 편안해지는 마음에 그처럼 행복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의 동치미 국수가 평양냉면 맛은 아닐지라도 할머니의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할머니의 풀 먹인 한복 냄새와 함께 그 추억이 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