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취경전

고독(孤獨)을 선택한 그들

by 구일권

일본군 오노다 소위는 1945년 8월 일본이 패 전한 뒤 전쟁이 끝난 것도 모른 체 30여 년을 필리핀 어느 정글에서 숨어 지낸 일본군 패잔병이었는데 1974년 패전 후 30년 만에 일본 정부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22세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나 52세의 중년이 되어 돌아온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정글 속에서 그 기나긴 시간을 버텨냈는지 그리고 전쟁에 바친 잃어버린 청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톰 행크스와 비슷한 생활을 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며 영화에서 처럼 다시 살아 돌아온 그 앞에 사랑했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과 절망을 느꼈던 그런 것처럼 일본으로 돌아온 그도 그가 간직하고 있었던 옛 기억보다 너무 달라진 일본의 모든 것에 대해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았고 결국 변해버린 일본에 대한 실망으로 멀리 남미로 떠나 그곳에서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다 죽었다고 들었다. 오래전일이지만 한 번은 화교 출신 동생과 차를 빌려 방콕에서 푸껫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10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수라 타니란 작은 도시는 나중에 알고 보니 태국의 유명 관광지 코사무이로 가는 길목이었다. 호텔 앞 거리에는 대나무발을 내린 조그만 술집들이 많았고 옛날 내가 다니던 대학 주변의 선술집을 연상케 하는 그런 동네였는데 온종일 운전과 더위에 지친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겨를도 없이 맥주 한잔 후 호텔로 돌아와 아주 쭉 뻗어 버린 것 같다. 다음날 이른 새벽 다시 푸껫을 향해 가다 보니 햇빛이 너무 뜨거워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데다 엔진도 너무 열을 받아 쉬어갈 곳을 찾고 있었는데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정글 속의 도로에서 혹시 미아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끼며 가고 있는데 어느 산모퉁이에 숨어 있는 듯한 작은 주유소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차를 몰아 들어가 보니 주유기 앞에 자그마한 태국 전통 가옥이 있었고 거기서는 국수 등 약간의 태국 음식도 팔고 있었다. 얼뜻보니 무스비(일본식 스팸 김밥)도 보이길래 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 주인은 일본사람이었고 아주 오래전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둔했던 일본군 출신으로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태국에 남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그때 기억을 되살려 글로 적다 보니 언젠가 전에 보았던 카모메 식당 이란 일본영화가 문득생각났다. 알 수 없는 모호함 속에 특이한 구성과 인물등 지루할 것만 같은 스토리가 나를 슬금슬금 끌어들였고 잔잔함이 묻어나는 그 스토리 때문에 결국 몇 년 간격으로 두 번씩이나 보게 만들었던 영화였기에 그래서 갈매기란 일본어 (카모메 )란 단어가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나도 해외 외딴곳에서 혼자 생활한 경험이 있어 그느낌을 같이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나 같으면 배경을 그리스나 스페인의 어느 작은 도시를 택했을 텐데 핀란드 헬싱키 라 좀 생뚱맞다는 괜한 생각을 해보며 떠오르는 건 일본과 우리 겨울의 차이처럼 화끈한 추위에 미리 대비하는 우리와 달리 오슬오슬 느껴지는 한기가 추운 듯 아닌 듯 무방비로 지내다 결국 감기로 골병들게 만드는 그들과 우리의 비교 아닌 비교를 해봤다.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는 이런 외진 곳에서 무슨 낙으로 살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는데 옆에 서서 잔잔한 미소로 우리를 지켜보던 예쁘장한 태국 할머니가 나의 근심스러운 생각을 없애 주었고 두 분 행복하게 오래 사시길 빌며 그곳을 떠났다. 5시간여를 더 달려 푸껫에 도착한 우리는 더위에 지쳐 기진맥진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는 마음이었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천국 같은 푸껫을 마음껒 즐겼지만 결국 방콕으로 돌아갈 때는 항공편을 이용 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미 여행 중 페루에 갔을 때는 1920년대 젊은 나이에 홀로 페루에 와서 현지인과 결혼한 후 페루 1호 가이드가 됐다는 90세의 일본인을 만났는데 우리를 안내하던 일본인 가이드가 굳이 우리 버스에 오르게까지 하며 우리에게 소개해줄 당시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보니 공항은 물론 관광지마다 비디오에서 그 노인이 페루를 홍보하는 모습이 화면에 보였고 그는 페루의 국보급 같은 존재라고 했다. 나중에 후지모리 같은 일본 사람이 페루 대통령까지 된 걸 보면 역사적으로 페루와 일본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여간 그 옛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멀고먼 페루까지 오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혼자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의 용기 또한 존경스러웠다.또한 오래전부터 프랑스 용병 부대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가족도 모르게 자원입대한 후 세계 각 분쟁지역에 파견 나가 군 복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에서 TV 를 통해 알게 되면서 그런 선택과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내가 생각했던 일본인과는 또다른 차원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살면서 만나게 된 이런저런 사람들을 떠올려 보니 모란동백의 가사와 같은 게 우리의 앞날인데 살아가는 방법의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본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행복해하는 표정들에서 고독에도 맛이 있다는 생각 지울수 없었다. 중국과 사드 문제로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화교 동생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까지 오는 바람에 그냥 숨죽이고 지내는 듯한데 그간 코로나 때문에 미뤄온 밥 한번 먹자던 약속 조만간 만나 한잔 하며 밀린 얘기를 나누려 한다. 마 광수가 좋아하던 최백호의 노래에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 그 시음장이 70년대까지 무교동 골목에 있었는데라고 기억하는 나는 벌써 가을을 타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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