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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Apr 13. 2022

아픈 만큼 성숙해진 나의 여행길

지난번 이태리 여행은 호텔 예약 전문 회사를 통해 가격도 저렴한 데다 사진으로 봐도 괜찮다 싶어 B&B(Bed & Breakfast)라는 숙소로 전부 통일한 게 큰 실수로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현지인도 잘 몰라 찾기 힘든 번지수에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간 뒤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그런 곳이 있는가 하면 마을버스만 다니는 산꼭대기에 내려 다시 가파른 220계단을 올라야 숙소에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주위에 공동묘지 말고는 마트도 보이지 않는 그런 외진 곳에 숙소가 자리 잡고 있어 귀곡산장에 와있는 참담한 심정으로 나흘을 보내기도 했다. 거기다 좁은 산길에서 마을버스와 접촉사고까지 일어나 경찰서에서 확인서를 받아 렌터카 회사에 가져다주는 일까지 벌어져 지금까지 여행 중 최악의 경험이었다. 나중에 며느리의 노력 덕분에 보험 처리가 잘 해결되어 다행이었지만 여행하다 보면 기상악화나 다른 이유로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는 건 다반사고 아예 비행 편이 취소될 적도 있어 항상 그런 변수에 대비해야 했다. 여권이 나 지갑, 수하물 분실 등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 등에 대비해 여행을 떠날 때는 여권용 사진이나 비상 구급약과 내가 먹는 약은 작은 가방에 넣어 늘 따로 들고 다녔고 여행경비도 두 세 군대 나누어 보관했다. 포지타노 숙소에서 지내는 5일 동안  매일 저녁 먹으러 갈 때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가파른 220계단을 내려가 거기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아랫동네까지 내려가야 하니 나의 노쇠한 무릎을 시험하는 극한 도전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숙소의 이름은 잊히지를 않는다. 단 하나 아말피 뒤 산 위에 있는 라벨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절경을 숙소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숙소 최고의 장점이라는 그거 하나였다. 코모 숙소에서 물건 분실은 숙소에서 일하는 집시 같은 여자 행동에 의심은 갔지만 물증이 없으니 대놓고 주인에게 문제제기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베로나로 오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좀 늦게 도착했더니 전화도 안 받아 집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그곳 젊은 친구들이 우리와 같이 숙소를 찾아주려고 30분 이상을 같이 돌아다닌 일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더워진다. 현지인도 찾기 힘든 번지수를 외지인이 찾으려 하니 진땀만 흐를 뿐, 그래도 늦은 밤에 끝까지 우릴 도와 집을 찾아주고 떠난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여간 모든 게 불편했던 이런 곳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집사람과 원칙 하나를 정했다. 앞으로 잠자리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로마에서는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에 오른 어린 여자 아이들이 자꾸 내주머니 쪽에 손을 비벼 대길래 손등을 꼬집어 주었더니 그 여자 아이는 말도 못 하고 슬그머니 내렸지만 마누라는 작은 동전지갑을 분실하고 말았다. 등에 맨 가방은 소매치기에게 가져가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는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지만 그 정도로 극성스러운지는 몰랐다. 우리 텔레비전에 자주 보이는 알베르토나 크리스티나를 보면  그들의 억양부터 흥겹고  수다마저 즐거워 보여 이태리 사람들의 좋은 이미지만 보여주지만 현지에서는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이태리 사람들의 태도에 열받는 일이 많았다. 같은 반도 국가 여서 그런지 우리와는 어느 정도 궁합이 잘 맞는 사람들 같아 보이긴 하는데 멋진 여자만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어대며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그런 귀여운 모습들은 우리와는 다른 이태리 남자들이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그들만의 방식 때문인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뭐하나 확실하게 되는 것도 없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유럽 전 지역을 로마 군단의 발자국 소리로 뒤덮었던 그들이었기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역사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알고 보면 역사적 유물이나 건축 등은 뒤로 하고라도 자동차나 화학분야 등 첨단산업이 대단하게 발전한 나라이며 패션이나 와인 산업도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그걸 증명하듯이 로마에서 밀라노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이태리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완연히 다른 하나같이 세련된 정장 차림의 멋쟁이들만 눈에 보여 밀라노는 역시 세계 패션의 본고장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비록 빈부의 차가 심하여 남쪽 지방은 가난하고 북쪽은 부유하기에 옛날 공화국 시절처럼 분리 독립하자는 얘기도 가끔 나오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래서 여행 중 겪은 안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고 다시 찾고 싶은 이탈리아였다. *부오나 조르나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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