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전부 몇 개국이나 다니신 거예요?라고 묻는 사회자 질문에 수십 개국을 다녀봤다고 여행자가 자랑스럽게 대답하면 모두 와~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들을 몇번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다. 물론 많은 여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여행은 즐기기 위한 것이지 실적 쌓기 위한 것도 아닐 텐데 대담 내용을 들어보면 뭔가 알맹이도 없는 그저 그런 '알쓸신잡'같은 얘기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뚜렸한 목적도 없이 누가 기다리는것도 아닌데 왜힘들게 그렇게 많은 나라를 무턱대고 다녔는지 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는 지난 여행 들이었다. 콜럼버스 같은 마음도 아닐 테고 역마차를 타고 신개척지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도 아닌데 여유도 없이 사진만 찍어대며 수박 겉핡기 식으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특별하게 얻은 지식이나 감동 같은 것도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여행 떠나기 전 준비하는 동안의 기대와 설렘만큼은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마구 달리며 한도시에 2박 또는 3박을 머믈게 되는 여행은 극기훈련이나 마찬가지라 여행에서 돌아오면 남는 건 극한 피로감뿐이었다. 그러니 여행 다녀온 사람들 누구나 말하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라고 하는 그 말이 정답이라 생각된다. 국내여행 이야 말이라도 잘 통하니 다행이지만 우리와 다른 언어나 문화 , 종교, 관습 등을 가진 해외의 많은 나라에서 여행 중 그런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건 당연한 일들이었다. 여행지가 정해졌으면 그 나라에 대해 기본적 지식이나 인사 정도는 좀 알고 떠나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을뿐더러 휴식인지 관광인지 아니면 문화 탐방인지 목적도 없이 한 번에 모든 걸 경험하려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지도 연령에 맞게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부모님 효도관광 보내드린다고 여행사를 통해 장시간 날아가는 덥고 짧은 동남아 여행 같은 곳을 보내드리는 것은 잘못하면 불효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굳이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싶다면 호캉스라고 하던가? 그런 것처럼 여유 있는 일정을 가지고 호텔서 충분히 쉬어가며 관광도 즐길 수 있게 하던지 아니면 한두 시간 이면 갈 수 있는 일본에서 온천도 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보내드리는 게 바람직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한도시에서 가능한 여러 날을 머물러서 피로가 쌓이지 않게끔 일정을 짜고 나서 여행을 떠났다. 지나고 보면 혼자 다니는 여행이 제일 마음 편하고 좋았지만 지금은 혼자 여행 갔다 돌아오면 현관문 비밀 번호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매번 다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닌다. 세상에는 갈 곳도 많고 여행하는 목적의 범위도 너무나 넓다는 걸 알기에 이미 지공 도사를 지나 지공 선사가 되어가는 우리 부부는 많은 곳을 방문하기보다는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는 그런 단순한 여행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전에 일주일씩 머물렀던 산토리니나. 타오르미나. 돌로미티 같은 곳에서 지낸 시간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 생각에 다시 찾고 싶은 장소 들이다. 일본에 있는 친구 말이 펜데믹 시국인 지금 일본 전역 온천 여관과 호텔 등이 전에 비해 반값밖에 안 된다며 이럴 때 일본에 왔으면 대접받을 텐데 라고 약 올리는 소리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 지루하고 답답한 마음에 여권만 꺼내 들춰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