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외로운 타향살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회 행사는 물론 향우회, 종친회, 전우회, 상인연합회 등 많은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있고 거기다 고사리 투어니 오징어잡이 투어 등 여행사에서 수시로 사람들을 부르니 심심할 틈이 없다. 언젠가 한국 할머니들이 얼마나 뜯어 제껻으면 뉴욕주에서 고사리 채취 금지령까지 내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억척스러운 할머니들 모습이 그려지며 웃음부터 나왔다. 좌우지간 뉴욕에 사는 한국 할머니들은 이래저래 수입이 쏠쏠하다. 미국서 공부하는 손자를 돌보니 한국서 꼬박꼬박 돈이 오지, 남는 방에 하숙 치지, 다른 집 애기도 봐주는 알바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하니 알부자일 수밖에 없고 또 그 맛으로 사는 것 같았다. 오래전 국내서 이혼한 친구가 그 충격 때문인지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기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부추겨 결국 그렇게 뉴욕으로 떠났다. 그런 몇 년 후 내가 뉴욕에 일이 있어 갔을 때 그 친구 사는 게 궁금 하기에 동창들 만나는 자리에 불러 넷이서 이른 저녁부터 시작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밤 12시 를 넘겨 가며 까지 술과 함께 회포를 풀었다. 헤어질 때쯤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이민온 친구가 경찰에 있는 동생 명함을 한 장씩 주며 만일 가는 도중 경찰 음주단속에 걸리면 그 명함을 보여주라고 했다. 미국 경찰이 그들 가족들 만큼은 확실하게 돌본다고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글쎄 그날 명함을 사용해 보질 않아 그게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공권력에 도전하면 강력하게 응징하는 미국 경찰이 심하다 싶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와 많은 비교가 되었다. 뉴욕에 며칠 머무는 동안 낚시 한번 가자는 친구 말에 주말에 그를 따라 동두 안 튼 이른 새벽 집에서 출발 롱아일랜드 몽탁(montauk)이라는 바닷가 어촌에 도착하여 일인당 100$을 내고 낚싯배에 올랐는데 그 배에는 이미 한국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낚싯대는 물론 미끼까지 챙겨주니 준비할 거라고는 배에서 먹을 점심만 챙겨 가면 되는 그런 낚시 투어였다. 그때그때 따라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나온다 했는데 그날 배가 멈춘 곳은 광어들의 소굴이었는지 우리 광어의 두세배 이상 되는 대형 광어들이 줄지어 올라오는데 그 당기는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니 배에 있던 빨간 모자 전우회 아저씨들은 생선가 개 차릴 만큼의 많은 광어를 잡아놓고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얼굴은 이미 두꺼비에 절여진 상태였고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라는 미국 선원 말에도 해롱해롱 회 떠먹겠다고 떼쓰는 아저씨들의 추태는 헬퍼 청년 보기도 민망했다. 우리는 큰 걸로 여러 마리 들고 와 친구의 지인들 10여 명을 불러 회 뜨고 소금구이에 일본식 조림 그리고 매운탕까지 정말 푸짐한 저녁이었는데 광어가 얼마나 큰지 세 마리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국산 광어보다는 쫄깃한 식감은 덜했다. 미국서 교민 회장 선거는 한국 국회의원 선거 보다 더치 열하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고 하는데 회장이 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앞으로 한국에 이민청이라도 생긴다면 청장 추천에 유리한 경력 때문일 거라 했다. 뉴욕 교민회 회장이었던 박지원 씨 같은 경우가 그렇게 성공한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도 상대를 비방하고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그런 행태를 보면 보기 흉한 한국정치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 속에서 바삐 돌아가는 한인사회를 바라볼 때마다 내가 그리던 미국은 아니었다. 한글 간판이 가득한 32번가 부근은 일상에 지친 한국인 에겐 잠시의 휴식과 위안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치열함의 정도가 무엇 때문에 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반면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가득한 쎈트럴 파크에서 여유롭게 운동을 즐기는 뉴요커들을 바라볼 때는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뉴욕이 세계의 중심 이 라선 지 영화에서는 외계인의 공격 대상이 아니면 재난 영화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시가 뉴욕이다. 9.11 사태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등 언제 또 다른 그런 일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봤다. 불확실한 미래의 재난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도 바라만 볼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9.11 사태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뉴욕은 여전히 변함없고 아름다운 도시였으며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인교포들의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