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종착역

취경전

by 구일권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행 다닌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글쎄 어디든 떠나면 다 좋지만 배부르고 등 따듯했던 곳이라고 말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아무리 볼거리가 많고 풍광이 아름다워도 잠자리는 물론 먹는 게 신통치 않으면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질 않기 마련이다. 오래전 지난 얘기지만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이 있던 1979년 12.12 사태 당시 해외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여권에 군 계엄사령부의 출국 도장을 받아 든 나는 당분간은 해외 출국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필리핀 마닐라에 머믈며 국내 소식을 들어봤지만 정상 회복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는 암울한 소식만 들렸다. 계획된 일정은 마무리했지만 지금 돌아가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온 김에 혼자 유럽여행이나 떠나보자는 생각에 바로 짐을 꾸렸다. 가진돈이 적어 내심 불안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과 용기만 가지고 당차게 출발했다. 필리핀 항공으로 4번의 경유지를 거쳐 25 시간 만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나는 비록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지금 같으면 한 달은 입원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이상도 견딜 수 있었던 그 당시 나의 체력이 쓸만했던 때였나 보다. 이른 새벽 공항 밖으로 나오니 낯선 거리에 내버려진 듯한 외롭고 공허한 그런 기분이었다. 당시는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때라 여행책자에서 추천한 숙소에 텔렉스로 예약한 후 숙소를 찾아다녔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런던에서 4일을 보낸 후 유레일 패스로 유럽 여러 나라를 한 달 넘게 돌아다니다 돈도 바닥이 나고 몸도 지쳐 여행의 끝이 보일 즈음 우연히 H건설사 중동 현장에서 몇 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여행을 왔다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차 한잔 하며 국내 소식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저녁까지 같이 하며 한잔하게 되었는데 식사하는 도중 내형 편을 알아차렸는지 자기가 경비를 댈 테니 여행을 좀 더 같이 다니자는 제안에 염치는 없었지만 그렇게 한 열흘을 충분한 영양보충을 하며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더 많은 곳을 다닐 계획을 가진 그에게 짐이 될까 봐 결국 내가 먼저 귀국하게 되었지만 고마웠던 그 친구가 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조르바의 고향이며 신들의도시인 그리스 아테네 에선 경비를 아끼려 시내를 벗어난 외곽에 방값이 아주 저렴한 2층 숙소에 묶었는데 2차 대전 때나 사용했을법한 씰룩거리는 야전 침대에 공동 샤워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그동안 매일 딱딱한 바케트 빵과 커피만으로 아침을 맞이했던 나는 이미 입천장이 벗겨지고 오랜 여행에 지쳐 허탈한 상태였다. 그날도 숙소 앞마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으려 내려가는데 파라솔 아래 노인들 4~5명이 앉아 있다가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한 노인이 바로 내게로 와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내가 6.25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었다며 너무 반가워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그분 댁에 초대를 받아 늦게 까지 좋은 음식과 와인을 대접받으며 많은 옛이야기를 나누었다.우리나라를 위해 육군 전투병과 수송기 등 5000여 명 가까운 병력을 파견했던 그리스 군은 700명 넘는 전사자와 부상병을 남기며 우리에게 큰 공헌을 한나라였다.하여간 이후 그리스는 여러번 갔지만 너무 아름답고 수많은 역사가 담긴 도시들이 많아 이루다 표현할수 없는게 너무도 아쉬운 곳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회색의 도시는 영혼이 살아 있는듯 내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렇게 아테네를 떠나 노트르담 사원과 에펠탑이 먼저 생각나는 파리로 갔다. 파리는 여러 번 방문했고 또 일주일 이상 머믄적도 있지만 그렇게 정이 가는 도시가 아닌 이유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와인과 샹송이 들리는 낭만의 도시인 건 분명한데 지난 여행에서 안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마음에 끌리지는 않지만 샹젤리제 도로 한가운데 있는 주차장에서 앞차 꽁무니를 밀어 대며 주차하던 흥미로웠던 광경만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31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난 전혜린의 생각에 찾아갔던 미라보 다리에서 센 강을 바라보며 파리에 아름다운 다리도 많은데 하필이면 미라보 다리였을까! 하는 나의 머릿속에서 문득 자학이 나 갈등 같은 단어가 떠올려지며 불꽃처럼 살다 갔다는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에서"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믄다"라는 구절에서 천재 전혜린을 찾아봤다. 몽마르트르 언덕 계단은 각국의 젊은이들로 가득한 정감이 넘치는 장소였는데 요즘은 관광객들의 기피 장소라 들었지만 전에 뤽상부르 공원이 있는 6구역 거리 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참 아름다운 도시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지나고 보니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떠돌다 이젠 여행의 종착역에 가까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는 하지만 또 다른 먼길을 떠난다는 생각에 설렘이 앞선다. 여행은 본질로의 회기라 했다.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건 이승과 저승 어디서나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젠 지난 여행의 그림자를 지우며 못다 한 이야기는 가슴에 묻고 긴 여행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을 해보니 세상살이가 힘들기도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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