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感覺)

취경전

by 구일권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 때 처음 대관령 스키장엘 데리고 갔는데 아이 앞에서 스키 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는 나도 10여 년 만에 타보는 거라 내심 긴장이 되었다. 정신없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젊었던 시절 감각이 되살아나며 멋지게 슬로프를 내려오게 되었고 그걸 본 집사람과 아이는 감탄하는 눈치였다. 내가 스키를 배울 그 당시는 리프트도 없어 죽을힘을 다해 걸어 올라가던지 아니면 스키를 신은채 발동기에 달린 줄을 붙잡고 끌어올려지는 방법이었다. 주위에 아무 편의시설도 없어 그냥 민박집에서만 지내며 한 보름간을 밤낮 가리지 않고 극기훈련 같이 힘들게 스키를 배웠다. 우리에게 스키 타는 법을 지도해주신 분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가족들이 국가대표였던 어(魚) 씨성을 가지신분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 참 대단한 분에게 그것도 무료로 스키강습을 받은 거다. 그리고 그곳 횡계 초등학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스키를 타고 학교를 갈 정도라 했으니 눈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 이 라선 지 나중에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시킨 학교라 들었다. 저녁 해 떨어질 때까지 스키를 타다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면 민박집 어르신이 주신 머루주에 밤새는 줄 모르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가 내가 살면서 행복했던 꿈같은 시절 중 하나였다. 몇 년 전에는 집사람 퇴직 기념으로 둘이서 한 달 동안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집사람과는 패키지로 유럽여행을 몇 번 다녀봤지만 이렇게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었고 또 렌터카로만 이동하기에 늘 여행에서 자유로웠던 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마누라와 절대 다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난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좋은 곳에서 맛난 와인과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전에 미국 동부나 서부여행 할 때도 렌터카로 여행한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의 운전은 경험도 있고 도로도 복잡하지 않아 다니기 편안했는데 이탈리아 렌터카 여행은 좀 달랐다. 유적지 등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제한구역이 많아 늘 신경 쓰다 보니 더욱 피곤이 쌓이긴 했지만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었다. 떠나기 전 항공사 다니던 후배가 산토리니 가려면 터키항공 타는 게 편할 거라며 또한 기내식도 훌륭하다고 알려줘서 그렇게 결정했다. 집사람과 나는 기내에서 주는 와인을 마시는 맛에 비행기 타는 재미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대머리는 난데 기내에서 제공되는 공짜 와인에 집사람은 나보다 더 욕심을 내며 값싼 와인에도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늘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그러지만 여행만 떠나면 날아다니는 원더우먼 같으니 그동안 엄살이었나 의심도 들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자동으로 신음소리를 내니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여간 11시간 인가 비행 후 이스탄불서 환승하려고 내려보니 전혀 색다른 공항 분위기에 잠시 긴장이 됐다.'오사마 빈 라덴'같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바닥에 눞거나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은 장날 같은 분위기였다. 거기다 기도를 알리는 방송 소리에는 저절로 숨이 멈춰졌고 눈에 보이는 다름일 뿐인데도 참 낯설은 공항 풍경이었다. 한 시간 넘는 환승 대기시간 후 다른 비행기로 아테네에 온 뒤 다시 그리스 AEGEAN 항공으로 갈아탄 후 산토리니까지는 궁둥이가 뻐근할 정도로 힘든 장시간 여행이었다. 쪼그만 산토리니 공항에 내려 렌터카 사무실로 가니 내가 예약한 종류의 차는 없고 남은 것도 전부 수동기어 란다. 이거 도대체 얼마 만에 해보는 건지 기억도 없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냥 덜컹 거리며 출발했고 마누라는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한 20여분 달리고 나니 옛날의 감각이 되살아나며 수동기어의 그 묘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소형 렌터카 덕분에 일주일 동안 산토리니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오래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 공항에서 인수한 FIAT자동차가 수동기어 이었음에도 부드럽게 운전할 수 있었으며 알프스 산맥이 있는 북쪽 도시에서 최남단 아말피까지 한 달 넘는 일정을 아무 탈 없이 우리와 함께해준 FIAT자동차의 등을 두들겨 주며 로마 공항에서 작별했다. 한때는 한국에서도 잘 나가던 자동차였는데 오랜만에 이태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제는 핸들이 오른쪽이던 왼쪽이던 상관없다. 아직 감각이 살아 있는데 정부에서는 고령자들 운전면허 반납하라고 꼬신다. 한마디로 NO.never. 아주 먼 여행을 떠날 때가 되면 어련히 반납하게 될 텐데 재촉들 마시라고 전하며 내 운명은 받아들이고 미련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지내다 천상병 시인의 글처럼 이 세상 소풍 왔다가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다 가려한다. 어린 꼬마의 노래, 아 옛날이 여가 내 가슴에 구멍을 내버렸지만 그래도 감각만은 남아있는 것 같아 좀 더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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