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군부대나 경찰에서 기르는 수색견이나 마약탐지견 그리고 시각장애인 안내견 같은 특수한 목적의 개들만 훈련을 받는 줄 알았는데 요즈음은 집에서 기르는 개들의 조련도 일반화된 듯하다. TV만 틀면 보이는 못된 버릇의 개를 훈련하는 프로가 수시로 보이니 하는 말이다. 거기다 개를 위한 보험부터 수입식품에 호텔까지 그런 걸 보면 개가 사는 세상도 사람들과 다름없는 것 같았다. 그런 반면 모란시장 한편 철망 안에 갇혀 있는 개들은 축 늘어진 자세로 모든 걸 포기한 듯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도 죄를 지으면 철장 속에 들어가겠지만 저개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어린 강아지까지 갇혀 있는 건지 하는 안타까운 생각 속에 시장을 나서며 인간이나 개나 어디서 태어나느냐가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다 죽은 개를 위해 장례식 까지 치르는 장면과 견주가 오열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본 적이 있지만 그런 대접을 받는 개들 보다 인간들로부터 토사구팽(兎死拘烹) 당하는 개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이다. 양몰이하는 개부터 썰매 끄는 개 그리고 도사견이나 핏불테리어 같은 투견 등 따져보면 개들도 참 직종이 다양했다. 샌디에이고 후배 집에 있는 진돗개는 마당에 쥐 나 뱀도 잡으며 집안의 경비견 역활을 다하는 살림꾼인데 신통한 건 담 옆으로 지나가는 미국인들을 보면 무섭게 짖으며 곧 담이라도 뛰어넘을 기세인데 내게는 처음부터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고 다른 한국사람도 마찬가지라 동포애를 느낀 건지는 모를 일이다. 동경 시부야를 지날 때 보이는 일본 제일의 충견이라는 하치코를 보며 우리의 진돗개는 위험한 화재현장에 뛰어들어가 주인을 구한 일부터 수많은 미담(美談)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우리는 우리의 토종견인 진돗개나 삽살개. 풍산개에 대한 예우가 소홀한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그러나 요즘 아파트에서 기르는 외래 잡종들은 한밤중에 짖어대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에게나 으르렁대며 여기저기 지려대는 천방지축인 개새끼들을 보면 된장 바른다는 얘기가 저절로 나올 만도 하다. 우리가 아직까지 일본만큼은 안되지만 아직도 개똥을 제대로 치우지 않는 견주들의 양심불량을 보며 개를 기를 자격도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은 듯했다. 파리 택시 대부분 앞 좌석엔 승객을 안태우지만 커다란 개가 앉아 있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차문을 여는 순간 개와 눈이 마주쳐 움찔했던 적이 있다. 태국은 더워서 일까 혀를 내밀고 비실비실 돌아다니는 주인도 없는 개들은 길거리에 여기저기 늘어져 있다. 그걸 개팔자로 보기에는 좀 그렇고 짖지도 않는 데다 광견병 피부병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완전 노숙자나 다름없는 도시개들이고 지방의 한적한 도로에는 개들이 늑대들처럼 떼로 몰려다니는 걸 보았는데 우리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유기견들이 모여 들개떼들처럼 북한산 주위를 몰려다닌다고 하니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나도 오래전에 개고기를 두세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우리와 중국만 개고기 문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은 듯 여름이면 유명 보신탕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연길에서 보았던 개고기 식당에서는 냄비에 콩나물 등 양념을 넣고 끓이는 우리와는 다른 조리방법으로 그야말로 개장국이었다. 전에 어느 외국 항공사 단합 대회가 미사리에서 있었는데 개 한 마리를 잡았다는데도 그 양이 엄청 많아 보였고 남자들 몸에 좋은 거라고 한20여명의 남자 직원들이 그걸 다 먹어치우는 모습은 그 자체가 몬도가네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 시골에서 개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나무에 매달고 장작개비로 그야말로 개 패듯 패다 개가 죽은 거 같으면 논에서 짚 위에 올려놓고 불을 피우는 정말 잔혹한 광경이었다. 그때 개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혼비백산 놀라 도망가던 동네 구경꾼들 , 개는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더니 이내 푹 주저앉던 그 광경이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질 않는다. 각설하고 히틀러는 물론이고 수많은 세계의 도살자들을 보며 인간은 왜 그렇게 잔혹해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잔인함은 동물 학대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인간에게 순종하며 위안을 주다 10여 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견공들의 노고 (勞苦)에는 감사하지만 어찌 됐던 개는 개답게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 (持論)이다.